* 실무자 일지 *
555
111111

권 경 란 전도사
 111
11.111111
이○숙 (유방암, 76세 여)
 
봄이 시작되는 4월의 어느 날 체격이 왜소하고 피부가 흰, 그러나 기품이 느껴지는 환자분이 사랑의 병동(호스
피스 병동)에 입원하셨습니다.
 
할머님은 2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메트로병원 외래로 보존적인 치료만을 받아오셨다고 합니다. 입원하실 때
에 상태는 아이들 말을 빌리자면 뽀빠이의 팔뚝처럼 왼쪽 팔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왼쪽 유방과 목, 그리고 겨
드랑이에 거즈가 두껍게 덮여있었습니다.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행된 드레싱을 할 때 보니 환부 세 곳 모두 움
푹 파이고 그 사이로 단단한 조직이 불규칙하게 돌출되어 보였고, 상처에 거즈를 떼는 부분이 넓어지면서는 출
혈이 있었습니다. 손목과 발목도 심한 강직이 있어서 조금만 만져도 아파하셨는데 심한 통증으로 제가 잡은 앙
상한 손에 힘이 주어지고, 깊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바라보는 저도 가슴이 저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
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힘든 상황에서도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입원직후 이뤄지는 보호자와의 면담에서 사랑이 묻어나는 딸 같은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환자) 권사님이세요. 찬송과 기도를 부탁드릴게요. 좋아하시는 찬송이 495장(내 영혼이 은총 입
어)이니까 자주 불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런 가족의 사랑도 어려움을 이기
는 힘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작은 체구와 연약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뛰어난 유머 감각과, 거기에 여유가 있으셔서 가끔 과
격한 언어를 사용하시므로 치료진들과 봉사자들에게 웃음을 주시고 계십니다. 가족들조차도 처음 보는 어머님
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죽음을 향하여 “올 테면 와보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
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3:5-6)”라고 외치는 다윗과도 같
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감사가 넘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믿음생활의 신비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사망의 골짜기라고 말하는 곳에
서 권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시고 감사를 드리고 계십니다.
며칠 전에 위로 차 며느님과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연한 모습에 궁금하여 “권사님은 어
떤 분이세요?”하고 물었습니다.
 
권사님이신 할머니께서는 4대째, 남편 장로님 쪽으로는 5대째 믿는 기독교 가정이시랍니다. 역시 믿음의 가문의
사람은 무언가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권사님은 1992년에는 뇌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때부터 오른쪽 반신마비가 있으셔서 가정에만 계
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손자 넷을 키우셨으며, 작년 7월에는 남편 되시는 장로님께서 간암으로 소천하시기 전
까지 믿음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본인도 환자이심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고 기도로 도우셨
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켜본(모태신앙이지만 믿음이 약했던) 아드님이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
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하는 말씀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권사님의 질병과 죽음은 한 영혼, 더군다나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의 믿음을 반석위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또한
권사님께서 삶을 잘 정리하고 계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 자신의 영적 생활에도 큰 힘을 얻고 있기에 권사님
을 뵐 때마다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믿는 이들에게 환란의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끙끙거리며 힘들어
하지만 권사님을 뵈면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가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고난의 늪 한가운데 우뚝 선 거인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