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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여름, 회사로 전화가 왔다.
출근할 때 아내는 몇 일전부터 숨이 차다며 가까운 병원에 간다는 말을 하였지만 평소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대
수롭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전화내용은 큰 병원에 한번 가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단다.
다음날 연가를 내고 아침 일찍 그 사람과 대학병원을 찾았다.
여러 가지 진료 결과는 난소암 4기(말기 암)로 판정을 받았고 수술과 항암제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때 내 나이 40세. 그 사람과 12년을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아내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었다.
바보처럼 살아온 날들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고 철없는 40년, 결혼생활 12년은 나에게 아무의미 없이 인
생을 헛살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난 아내가 아프게 된 그 해를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디에도 자
식보다 아빠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쉬쉬 하려했지만 어떻게 해서 며느리 소식을 들은 아버님께서 쇼크로 쓰러지시더니 일어나지 못하시고 다음해
가을 세상을 떠나셨다.
아내도 항암 치료 후 호전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온몸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2006년 가을 조용히 하나님 곁으로
떠나 버렸다.
또한 아내의 사망 소식에 장모님께서 식음을 전폐 하시더니 3개월 후 또 세상을 떠나셨다.
 
암 발생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스트레스도 그 주요인이 된다고 한다.
만약 내가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남들처럼 잘 해 주었더라면 아마 지금도
처, 아버님, 장모님께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계실수도 있을 텐데…….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난 3명을 죽였지만 현행법으로는 살인자도 아니고 멀쩡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회
생활을 하고 있고 남들도 나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연쇄 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계신다.
이런 내가 어떻게 내 배만 채우며 살 수 있겠는가.
아내가 마지막을 보낸 메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봉사자님들의 사랑과 기도로 환자인 그 사람과 나를 얼마
나 편하게 해 주셨는지 모른다. 너무나 고마워 기회가 주어지면 나도 호스피스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막상 호스피스가 되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이 많으신 권상돈 선배님께 많이 배우고 조언도 받지만 난 아직 멀었다.
내가 아무리 ‘역지사지’란 말을 되새기며 환우님들의 입장에 서 보지만 환우님들의 절박한 심정을 어떻게 알리
요? 나도 환우님과 같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이고 그 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호스피스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도
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하겠는가.
오히려 환우님께 상처만 남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내가 떠나기 3일전. 주일날 오전 내내 아내 곁에서 간병을 하다가 점심 먹으러 집에 들렀다. 10분만 누워 있다
가 병원에 간다는 것이 30분이 흘렀을 때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안 오고 뭐해” 힘없는 짧은 한마디……
난 왜 3일후면 죽을 아내를 병상에 눕혀놓고도 집에서 낮잠을 잤을까. 지금 생각해도 후회만 남는다. 이게 바로
나다. 그렇지만 아내는 이해 할 것이다.
그 때가 내 나이 3살이고 나도 내년이면 유치원에 가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