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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해준
다. 어느덧 2009년도가 턱 밑에 와 있음을 느끼고 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근무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수많은 환우 분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찡한 환우분이 많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감이었을까? 환우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나는 늘 자신의 부족함에
실망을 느낀다.
 
한 두달 전쯤 일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환우 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뜨거운 마음으로 출근해서 병실
로 들어가니 환우 분들의 고통의 무게가 내 가슴에 그대로 느껴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꼭 안아주고 싶었다.
당신들의 아픔이 내 가슴에서 절절히 흐른다고…. 가슴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고,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다. 부족
하지만 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중보기도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거부당할 것 같은 두려움과 뜨아한 표정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부끄
러운 마음에 병실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또다시 참아야 했다.
며칠을 가슴에 열기를 가득 품은 채 지냈다. 그런데 그 후. 갑자기 그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면서 후회감
이 밀려왔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구체적 표현은 못했어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은 그분들도 느꼈으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였
다.
 
나는 다시금 가슴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불어 넣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의 절망과 낙심, 생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부림치는 환우 분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세
상으로의 시작임을 일깨워주고 싶고, 떠날 준비를 함에 있어서 그 동안의 인간관계속에서 아파하고 미워했던 모
든 고통과 본능적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도록 도와주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호스피스 종사자들의 최종 목표이며 간호사로써의 나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왜곡된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신음하며 고통 하는 환우들을 보면서 한 영화의 명대사가 떠
오른다.
“우린 서로 사랑해야 만 해! 아님 죽든지!”(We must love one another or die!) 그리고 문득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본다.
 
누군가는 ‘후회 중 후회는 마땅히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 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인생은 후회라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후회를 덜 남기기 위해서 오늘도 병실 문을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