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무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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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미 라
로뎀나무 지킴이
11.111111
우연은 없다
호O자(폐암. 여. 71세)
 
젊은 나이에 자녀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을 하신 환우님은 무척이나 외로운 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폐암 발병
전까지 재봉사로 일하면서 방송통신대학 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하니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서러
움을 향학열로 달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님은 곽 티슈를 엄청나게 쓰심으로 휴지통은 항상 만원이었습니다.
양치질은 왼손 오른손 번갈아 가며 상당한 시간을 써야 했고, 용변을 보신 후에는 양손을 씻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급해진 다른 환우 분은 힘든 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일종의 결벽증인 것 같았는데 아마도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에 측은하기
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녁마다 드리는 예배에는 열심이었습니다. 어깨 근육무력증으로 고개를 들려면 한손으로 얼굴을 받혀
야만 들 수 있었습니다만 그 힘든 모습을 하고도 예배는 잘 드렸습니다.
배움이 있으셔서 그런지 처음 듣는 설교임에도 틈틈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도 하셨습니다. 아마도 예배시간이
유일한 여유와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느 날. 조카는 “사전에 말씀을 안 드렸지만 그동안 신청해 두었던 요양등급이 나왔으며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
니 집에서 방문간호로 지내겠다”는 말과 함께 모시고 퇴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일 지나지 않아서
조카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듣는 순간 몹시 안타까웠지만, 곧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접한 복음은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고 떠나

셨으리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경험 상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정작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
님’(잠16:9)이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조가 되어
유O례(대장암. 여. 82세)
 
할머니는 대장암 수술은 하셨지만 그 후 자란 암 덩어리에 의하여 변이 막혀 있다가 몇 일만에 많은 양을 한꺼번
에 쏟으시곤 하셨습니다.
일단 배변이 시작되면 무척 고통스러워하셨고 오랜 숙변이라서 그런지 냄새 또한 상당하였습니다. 정신이 또렷
한 할머니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무척 미안해 하셨습니다. 입소 당시 가족도 “냄새 감당하기가 어
려웠다”고 미안해하며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그런 일 말고는 그런대로 잘 지내셨지만, 같은 방의 강O순 할머님과 몇일 전 메트로병원으로 옮기신 이O세 할
머님의 자녀들이 번갈아 찾아오는 걸 보면서는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자식들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이 크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엔가 작심을 하신 듯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다니....”하시며 신세 한탄을 하셨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회의를 하였고 직원들이 기쁨조가 되어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중국집 우동이랑 짜장면을 사다가
한상 잔치(?)를 벌리기로 하였습니다. 마치 면회 온 자식들처럼...
잔치 중에 “자녀들도 사는게 벅차다 보니 그런 것이니 너무 노여워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하며 위로를 드렸
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셨고 흐뭇한 표정으로 행복해 하셨습니다.
이어 드린 예배에서 목사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해야 할 이유로 주님은 ‘끝까지 함께 하시기 때문’인
것과, 외롭고 서러울수록 더욱 예수님을 의지하실 것을 권하여 드렸습니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이렇게 외로운
데도 옆에 주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함께...
할머니는 큰 소리로 “아멘”을 연발하셨습니다. 말씀에 큰 위로를 받으셨는지 그날 이후로 다시는 신세 한탄을
하지 않으십니다.
 
저희는 “한 영혼을 사랑함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받아 드리지 못한 분’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당초의 생각처럼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
았습니다.
쉼터 특성 상. ‘의식이 또렷하고 스스로 관리가 가능하신 분을 대상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아마도 이래서 나온 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벅찬 것만큼 보람 또한 큰 것’도 사실입니다.
호스피스는 구원 전선의 최첨병(最尖兵)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섬김의 기회를 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