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선택

* 가정호스피스봉사일지 *

문덕남 집사

제 8기 회장

가정 월요 A팀장

나에겐 예전에 없었던 습관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후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

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님, 제가 만나는 병든 예수님들 그냥 스쳐 지나가게 하지 마시고 이 손을 빌어 주님의 사랑이 그들에게 전달

되게 하여 주옵소서."

대상 - 정○○: 위암말기, 87세로 본인은 위장병으로 알고 계심

대상 - 김○○: 치매, 우울증이 있으시며 마른 울음을 자주 우심

2월 28일(금요일)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여 나무들은 저마다 꽃망울을 머금고 방금이라도 터질 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비산동에 있는 할아버지 댁을 첫 방문, 초인종을 누르니 할머니께서 우리 일행을 맞으신다. 할아버지가 어디 계

시냐고 물으니 할머니께서는 모르신단다.

그런데 안방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는 방에 누워 계셨다. "아, 말로만 듣던 치매가 이런 것이구나" 치매의 심각

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당신 나이도 기억 못하시며 집 밖을 나가셨다가 집을 못 찾아오신 적도

있으시단다.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할머니께서 주기도문, 사도신경, 찬송가 이 모두를 다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 오, 주님 할렐루야! 은혜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우리의 첫 상견례는 끝났다.

3월 4일(화요일)

음식 냄새가 역겨우시다는 할아버지는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하고 미음이나 죽과 같은 것을 드시는데 매 끼니

마다 이것을 준비해 주시는 분이 없으시다. 그래서 캔에 들어 있는 것을 드시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캔 대신에

퐁퐁을 갖다 드렸다며 할아버지께서 짜증이 나 계셨다. 낮 동안 두 분만 계시는 집이라 이런 일이 발생하니 참

으로 딱한 노릇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통증은 크게 못 느끼시는 것 같았고 기운이 없으시고 체중이 15kg이나 빠지셨다고 우울해 하

신다. 아직도 당신의 병이 얼마나 심각하신 지 모르셔서 3년이나 남은 구순잔치 걱정을 하시나보다.

언제쯤 할아버지께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알려드려야 하나?

"주님 우리 할아버지에게 이 땅에 있는 것 모두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3월 11일(화요일)

오늘은 할머니 목욕하시는 날이다. 할머니는 씻기를 싫어하신다. 그래서 지난주에 단단히 약속을 받아 놓으터

다. 욕조에 가득 물 받아 머리 감겨드리고 때 밀어 드리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다음에 또 목욕을 해 달라신다.

할머니는 84세 노인이지만 단정한 단발머리에 소녀처럼 머리에 예쁜 핀 꽂고 웃으시는 모습이 천사같다.

예배도 얼마나 열심히 잘 드리시는지, 심성도 고우셔서 우리만 가면 무엇이든 대접해 하고 싶어하신다.

"주님, 우리 할머니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맑은 영을 주소서."

4월 8일(화요일)

예배 드린 후 할머니와 아파트 근처에 꽃구경 나들이를 했다. 벚꽃과 개나리가 참으로 예쁘다며 얼마나 좋아하

시는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할머니가 우신다. 할아버지께서 이제 당신의 병을 눈치 채신 것 같고 아침에 할머니께 오

래 사시지 못할거라 말씀하셨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오래오래 사시고 싶다시며 서럽게 우셨다. 오랜 세월

고락을 같이 한 부부애가 이런 것이구나를 생각하게 한 숙연한 하루였다.

4월 21일(월요일)

할아버지는 영양제 주사 덕분인지 지난주보다 생기가 있으셨고 할머니는 몸살 기운으로 누워 계신다. 예배드린

후 할아버지께 세례 받으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다. 죽을 날이 가까운 노인이 무슨 세례냐시며 이렇게 예배보

면 되지 않느냐고 하신다.

"할아버지, 예수 믿고 세례 받으시고 천국 가셔야지요. 그래야 우리 모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어요

?" 힘주어 말씀드렸다.

"주님. 오늘도 간구 드립니다. 남은 생 참으로 주님 영광을 위해 헌신 봉사 하고자 합니다. 받아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