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무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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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경 란 전도사
병동 자원봉사자실장
이○순(자궁암, 85세, 여)
 
할머니는 치료 불능의 말기 자궁암으로 입원을 하셨는데 작년 11월 한 대학병원에서 진단 받으셨을 때는 이미
직장(直腸)으로 전이된 상태이셨습니다. 가족들의 말로는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권하셨으나 할머니 본인이 거
절하셨다고 했습니다.
의식은 명료하셨고 의사소통도 잘되셨으나 표정이 어두우셨습니다.
입원하신 며칠 동안은 하복부 통증이 지속적으로 있어서 주무시다가도 자주 깨셨고, 변비가 있으셨고 식사도 거
의 못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첫 만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종교가 있으시냐고 여쭈웠더니 불교라고 하셨습니다. 혹
시 예배시간에 당황하실 것 같아서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려요. 종
교가 다르시지만 양해를 해주세요. 싫으시면 그냥 계시면 되요.”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혹시나 예수를 믿으라고
할까 보아서인지 경계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서는 안색도 많이 밝아지시면서 점 점 안정을 찾아 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빠르
게 적응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서는 “나는 평생을 불교를 믿었지만 여기와 지내다보니 얘기(설교
)가 이해도 되고 또 예배를 드리면 왠지 맘이 편안해요” 하시는 것이 아닌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말씀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였지요.
예배를 드리실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앉아서 드리려고 애쓰셨고 기도를 해 드릴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을 하셨
습니다. 얼마 후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예수님 영접 기도도 하셨습니다.
 
4월 들어서면서 통증도 줄어들고 숙면을 취하시는 날이 많아 지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량도 늘어나고 휠체어 산
책도 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과장님께서 회진하실 때면 가끔씩 “너무 잘 먹어서 탈 이예요. 그런데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낫질 않네요. 빨리
걸었으면 좋겠는데……” 라시며 점점 안정되는 컨디션 때문인지 치료기대를 갖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예배시간이면 일어나지는 못 하여도 두 손을 모으고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세례에 대해 여러 번 설명 해드리고 받으실 것을 권해드렸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그 뜻
을 이루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할미꽃, 우산나물, 조개나물, 초롱꽃, 구름미나리아제비, 금낭화, 하늘매발톱, 금새우란...
우리나라 자생화의 이름들입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저는 결혼 전부터 십 수 년 간 꽃꽂이를 했었습니다.
특히 좋아했던 것이 동양 꽃꽂이 중에서도 사경(寫景)이었습니다. 경치를 묘사하는 것인데…… 그 때는 조그만
들풀을 즐겨 사용합니다.
장미처럼 화사하고 뛰어난 꽃들은 일시적인 행사용으로나 잠깐 제 손을 거치지만 마음에 아름다움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조차 불리어지지 않아도 이곳저곳에서, 심지어 벼랑의 움푹 패여 진 바위틈에서도 말없이 꽃으로 피
어나 제몫을 다하는 그 꽃들은 보면, 그 은은함으로 인하여 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리곤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많은 환우 분들을 뵙고 있는데, 어떤 분들에게는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할머님에
게는 자생화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6남 4녀를 키워내신 어머니이십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하는데 짐작컨대 아마
삶의 끝자락에서 만난 암병 보다도 더 아프고 힘들었던 때가 많으셨으리라고 짐작됩니다. 그런 분이실텐데도 그
분은 늘 단아(端雅)한 모습이셨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작은 일에도 늘 고마워하는 소박한 분이셨습니다.
호스피스병동에서는 거의 진실만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살아온 모습들은 어떠하든지……
이곳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삶의 끝자락에서의 할머니 모습으로 저는 그 분의 삶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여호와여, 아침마다 주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니, 매일 아침 나의 소원들을 주께 아뢰고 주님의 응답을 조용히
기다립니다(시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