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무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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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경 란 전도사
병동 자원봉사자실장
김○구(폐암, 58세, 남)
환우님은 5월.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신 후 벌써 4개월이 되어 가십니다.
2007년 12월. 한 대학병원에서 폐암진단을 받고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진전이 없었고, 상태가 악화되자
방사선 치료밖에는 해줄 것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환우님은 이를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가정에서 계
시다가 지인의 소개로 입원을 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오시던 날 저녁엔 많은 양의 피를 쏟으셨습니다. 통증도 심하시고 식욕이 없어서 물만 겨우
드셨고 말붙이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상태는 잔여 생존기간 예측이 어려울 만큼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분이 지금은 지독한 병마와 사투를 벌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매일 드려지는 예배시간마다 감사해 하시며
계십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제 뇌리에는 ‘아버지’와 ‘내려놓음’이란
두 단어가 오버랩 되어지기도 합니다.
 
■ 아버지
6월 11(화)일, 아침 회진 시간에 “토요일까지 살게 해주세요. 딸이 결혼을 하는데 그날 함(函)이 들어오는 날입
니다. 그걸 보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하셔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셔서 딸 내외가 살 집까지 다녀오시고, 단골이발소에 가셔서 이발까지 하고 오셨습니다. 통증은 계속되
고 지쳐 보이시긴 해도 밝은 표정을 본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는 식사도 조금씩 하시고, 우스개 소리도 하실 정도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6월 17일부터는 통증이 심해지셨는데 이번에는 “6월 27일에 있을 딸 결혼식 날까지 살게 해 달라”는 두 번째 부

탁을 하셨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 봉사자 브리핑 시간 때마다 기도를 부탁하여 전 봉사자들이 그 문제를 놓고 기
도했습니다. 매일 심해지는 환우님 상태를 보는 저는 결혼식에 가실 수 있을런지 불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만 하
나님은 이 소원도 들어 주셨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마음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가르쳐 주고 싶으셔서 가정을 주시고, 부모가 되게 하셨나 봅니다.
특히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싶으시고, ‘아버지’라 불리고 싶으시고,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내려놓음
7월 들어서는 통증은 더 심해지지 않으셨으나 음식을 드시면 바로 토하셨습니다. 왼쪽 목에 암 조직이 점점 커
지고, 가래가 많아 졌습니다. 그리고 왼쪽 손과 팔 전체가 퉁퉁 붓고 통증이 있고, 잠을 주무시지를 못했습니다.
증상에 따라 진통제 용량도 증량 되었고, 특히 부신피질 홀몬제인 덱사가 들어가지 않는 날이면 더욱 힘들어 하
셨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안정되어 가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환우님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더 평안
해 보이셨습니다. 매일 드려지는 예배는 꼭 앉아서 드리시고, 감사예물은 봉투에 담아서 정성스럽게 드리곤 하
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예배자의 모습을 봅니다.
 
몇 년 전.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란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책에서 소개 된 내려놓음의 목록들을 보면 미래의 계획, 물질 창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 죄와 판단……
.등이 였는데, 저자는 “‘내려놓음’이란 이런 것들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의 결단이다”하였습니다.
호스피스 환우 분들은 이제는 생명까지도 내려놓아야 할 시점에 계십니다.
우리 모두도 사실은 그 시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만, 두려움이 앞서서 감히 그 사실을 생각하려 하지 않고 오히
려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환자 분은 의학적으로 예상되던 생존기간을 훌쩍 넘기면서 자신의 것을 내려놓으시고 대신 하나님의 것으로 채
우는 훈련을 시간을 가지고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잠깐 들렀던 이곳을 떠나 영원한 본향을 가기 위한 준비를 그 분은 아주 착실히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