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무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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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경 란 전도사
병동 자원봉사자실장
 
최○주(신장암, 50세, 여)
 
오늘은 그녀가 가족들과 생전에 함께했던 이들의 곁을 떠나는 날입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러 갈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진 후 더 이상은 잠들지 못하던 중, 그녀와 함께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갑작스레 헤어짐에 눈물이 났습니다.
얼마 전 프로야구팀(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연패를 거듭한 후, 연승을 할 때, 그 때 심정(각오?)을 묻는 질
문에 “매일매일 내일이 없는 싸움을 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경기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이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첫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골반 아래가 저리고 아파서 못 주무시던 모습밖에는…
그녀는 2년 전. 신장암이 발명하여 모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하시다 다른 병원을 경유해서 이곳에 오셨습니
다.
당시 대퇴골골절이 있어서 통증이 너무 심하고, 하반신에 감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입원 후 점차 통증도 완
화되어 잘 주무시고, 식사도 잘하셨습니다.
 
이곳에 계시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통증과 증상이 완화되면서(한정적이지만…) 여유를 찾게 되면 자신의 병이
나아간다고 여기는데 이분도 역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리곤 하나님께서 꼭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날마다 성경책도 열심히 읽으시고, 예배도 정성
스럽게 드리셨습니다. 억지를 쓰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하루하루를 위해 영의 양식뿐만 아니라 육
신의 양식도 시간마다 챙겨 드셨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면 보통은 자포자기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비하여 이분은 정말 최선을 다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표정도 밝아지시고 특히 환자는 미모가 뛰어나셔서일까 봉사자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먹는
약으로 바꾸고 퇴원하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일이면 외출하셔서 섬기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
리고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다리에 부종이 있었으나 기분은 아주 좋으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어려움들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때론 저와 우스개 소리로 ‘누가 더 이쁘냐’는 말씀도 하시고 새로 바꾼 전화기로 문자도 나누며, 어느 봉사자님
께서 머리 염색도 해드려서 즐겁게 지내셨습니다.
그녀는 늘 침상 옆에 손거울을 두고 보시는 거울 공주였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님의 생신축하연에 다녀오신 후로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시고 열도 오르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거의 식사도 못하시고 의식도 가끔씩 혼미해지셨으나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상태는
점점 어려워져 갔습니다. 조용히 임마누엘 방으로 옮겨 모셨습니다. 본인도 임마누엘 방이 어떤 방인지를 인지
하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모신 방으로 가서 “집사님! 기도해 드릴까요?”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안에서 잘 살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 아멘”하며 기도를 마치자 “
전도사님. 사실은 저 잘 못 살았어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이미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위로해 드리자 고개를 끄덕
이시고 곧 평안해 하셨습니다. 그리곤 찬송가 211장(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흘린 피)을 불러 달라시기에 함
께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다음날, 집사님은 남편 집사님께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셨는데 “당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잘
못한 것이 많으니 용서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나도 곧 당신을 만나러 갈꺼야”라고 하자 아이들 결
혼시키고 오라고 하신 후, 다음날 새벽에 정말 평안하게…그 예쁜 모습 그대로를 하지고 사랑하는 남편의 배웅
을 받으며 천국 길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병원 후문 쪽으로의 산에는 자작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나무의 아름다움은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에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초겨울이 되면서 모든 나무들의 잎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횅하니 푸른빛을 내는 날이면 은빛 자작나무 줄
기와 줄기사이로 보이는 푸른빛의 하늘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모두가 동면할 때 더 아름다운
자작나무처럼 임의 가시는 길도 그러했습니다.
 
그녀가 보여 준 마지막 모습은 마치 호스피스 교과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