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칭찬 릴레이 *
555
1111

김 정 숙
故 김○숙님의 동생
 
장례를 마치고 집에 와 기절하듯 쓰러졌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병실에서 죽음을 앞에 둔 환우들과 2개월
남짓 지내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해온 것이 몸에 배어서인지 잠이 오지 않더군요.
인생의 황혼을 장식하듯 꽃보다 고운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10월 중순.
성남 영생원으로 가는 갈현동 산길엔 가을빛에 물든 들국화가 수줍었고 두 달간 병실에 있느라 밖에 한번 나가
보지 못한 탓 인지, 맑은 공기와 가을 햇살은 어찌 그리 투명한지 마치 굴속에 있다가 나온 듯한 신선함을 보았
습니다. 화장한 유골이 담긴 함을 받아들고 추모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으며 바라본 계곡과 정원엔 이르게
떨어진 가을 낙엽이 처연하게 고왔습니다. 일찍 떨어진 낙엽이 언니의 생처럼 보여 얼마나 애처러웠는지 모릅니
다.
 
유방암 말기 확진을 받는 건 올 4월초였죠. 이미 온 몸에 전이된 상태라는 말을 언니는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받
아들였고 “일체의 항암을 하지 않겠노라” 하늘이 주신 운명의 길을 순리대로 따르겠노라 했습니다. 그리고 몇
군데의 병원을 거쳐서 메트로병원에 온 지 한 달여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메트로병원은 산 밑에 아주 높고 넓은 위치에 자리 잡은 큰 병원으로 안양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뵈어 전망이 시
원하였습니다. 이곳에 올 때 '언니가 저 가로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이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간절히 바랬었습니다. 간혹 좋은 컨디션을 보이는 날엔 ‘저 가로수 길에 하얀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이는 겨울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그 좋아하던 겨울눈도, 가을날 은행나무
가로수 길도 보지 못하고 서둘러 이 세상을 훌훌 떠나갔습니다.
 
나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물건은 언니가 마지막까지 베던 베개와 덮던 이불입니다. 병원베개는 너무 딱딱
하고 이불 또한 무겁고 따뜻치 않아 제가 새로 사준 것들 입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참을 수 없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 중에 있던 언니의 체취와 흔적이 배어있는 애틋한 것 들입니다. 특히 임종 전 이틀간은 얼마나 괴로워했는
지요. 극심한 통증과 고열 호흡곤란으로 혼수상태에 몇 번씩 처하며 진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베갯잇이 금방 흠
뻑 다 젖곤 했습니다. 말기 암 이라고는 하나 아직 젊은 육신이었고, 또 혈관의 피는 얼마나 깨끗 했던지요. 또한
투병기간이 6개월로 짧았던 것도 젊은 육신이 질긴 생명의 줄을 놓고 급격히 소멸하기엔 너무 힘겨웠었나 봅니
다.
 
그 영혼이 다시는 사망이 없고 눈물이 없고 고통과 이별이 없는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는 하나, 이 세상 사는 동
안 정을 나눈 부모형제와 자녀를 두고 혼자 떠나기엔 그 슬픔이 감당키 어려웠겠지요. 맏딸로서 아버지의 사랑
을 가장 많이 받았고 그런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가야하는 불효가 너무 아파 문병 온 늙은 아버지를 차마 바라보지
못했고, 아버지도 가슴이 찢어져 딸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덜덜 떨며 우리들의 부축을 받은 채 겨우 보셔야
했지요. 아버지에게 49세의 언니는 아직도 어린 아기였나 봅니다. 아버지는 “우리 아가 내 딸 *숙아!”를 부르며
피눈물을 흘리셨지요. 그 베개를 사랑합니다.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베개를 삶는 일이었습니다. 집에
가져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마터면 평생을 두고 아쉬워 할 큰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저는 그 베
게가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끌어안고 자려고 합니다. 언니를 생각하면서, 언니를 보듬고 자듯 말이죠.
 
혈육의 정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선 왜 우리에게 혈육을 주셔서 남보다 더 사랑하고 정을 나누고 살게 하셨을까요? 나에게 친언니라는
인연으로 온 사람. 그 분을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밤꽃 피는 여름 언니와 밤나무 숲을 지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제가 벌들에 휩싸이게 되었지요. 언닌 단호한 표정
으로 “정숙아, 뒤돌아보지 말고 힘껏 집 쪽으로 뛰어! 알았지?” 그리곤 자기 겉옷을 벗어 내 몸에 붙은 벌들을 때
렸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뒤돌아보니 벌들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언니가 보였어요. 마침 꼴을 베던 아저씨가 비
명을 듣고 달려와 구해주지 않았던들 언니는 큰일을 당할 뻔하였지요. 언니는 그 후유증으로 고열에 시달렸고
학교를 며칠 결석을 하였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지요. 어느 여름 하교 길이었는데 아주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
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지요. 사납기로 소문난 은숙이네 개였어요. 우린 둘 다 무서워 그 자리에 우뚝
서 어쩔 줄 몰라 했지요.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개는 다가오고... 맨살인 종아리를 물리면 이빨자국과 함께 피가
날 것이 뻔하였지요. 그 순간에도 언니는 결연히 나를 자기 등 뒤에 세우고는 팔을 벌려 “자, 물려면 나를 물어
라!”이런 자세로 당당히 개 앞에 섰지요. 초등학교 5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것이 그 위기의 순간에 어찌 그런
본능으로 동생을 끔찍이 먼저 위할 줄 알았을까요? 학창시절에도 언니가 있어 우린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건 제
가 살면서 언니에게 수없이 고백한 말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임종 이틀 전에 수없이 한 말이기도 하구요.
 
메트로병원에 온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언니는 회진 온 의사선생님께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복도로 나가더군요.
내가 따라 나가자, “너는 들어가 있어.”하더군요. 다음날 의사 선생님께 어제 언니가 무슨 말을 하더냐고 몰래
여쭈어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하시는 말이 ‘저 좋은 내 동생이 후각기능이 안 좋아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내 후각신경을 주고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느냐? 나는 어차피 죽을 몸이니 내 생명이 아직 붙어있을
때에 나를 좀 어떻게 해서 동생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언니는 이
미 오래전 장기 기증을 서약 했었습니다. 병원에 와서 그곳에 전화를 걸어 데이터베이스에 그렇게 되어있는 걸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주 기뻐하였으나 임종 후 다시 그곳에 연락을 했을 때 가슴 위쪽 부분의 말기암은 전이 가
망이 높아 쓰기 어렵다는 정중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언니는 자기의 시신을 해부학용으로 기증하고 싶다고 내게
누누히 당부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는 언니의 장례가 초라하고 소박할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만 예상외로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언니는 내게
당부하기를 친척이건 동네친구건 교회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례비도 아까우니 거적에 둘둘 말아서 화장
해도 좋다고 했거든요. 언니가 다닌 교회의 목사님은 “수많은 성도들을 보아왔지만 김*숙 성도는 한마디로 사랑
스러운 여자! 참으로 정직하고 보기 드문 이런 귀한 여인을 아내로 얻은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 늘 궁금했었다.”
라며 안경너머로 눈물을 훔치며 설교의 말 문을 열었는데 참석한 성도들과 유족이 눈물바다를 이루어 발인예배
는 숙연하고도 뜨거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서 고인을 추모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사람은 말로 평가 받는 게 아

니라 행동으로서 평가되어진다는 것을 언니의 삶과 장례를 보며 새삼 알았습니다.
 
언니와의 마지막 생의 추억이 담긴 메트로병원! 사랑합니다. 언니를 간병하며 함께했던 그 여름이.. 이 가을이
그립습니다. 비록 힘겹고 고통스럽던 병원생활이었을지라도 함께 의지하고 사랑하며 피붙이임을 확인하던 그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물들 때면 그곳을 몇 번이고 걷겠습니다. 눈이 오는 날도 그 곳을 찾겠습
니다. 언니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장례버스에 실려 내려오던 그 길과 특히 잊을 수 없는 곳 631호실 그 침대. 그
리고 마지막 가쁜 숨을 토해내던, 미친 듯한 심장의 박동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곳 임종방 이었던 임마누엘실. 잊
을 수 없을 겁니다.
특히 6층 병동 여자화장실에 애틋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화장실 출입을 하던 언니
는 점점 그곳을 가기 힘들어 했지요. 다리에 기운이 빠져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어 나중엔 휠체어, 나중에 침대
에 누워 기저귀로 대소변을 해결하다가 상태가 더 악화 되었을 때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소변 줄을 끼워야 했지
요. 생명소멸의 그 슬픈 노정... 화장실 한번 갔다 오려면 우리에겐 몇 발짝 안 되는 그 거리를 20분이나 걸려야
했고 거기 가서도 변기에 앉힐려면 엉덩이를 내 두 손으로 받쳐주어 앉히고 일어설 때도 내 손으로 받쳐 일으켜
주어야만 일어설 수 있었지요. 용변 보는 일이 그토록 고역이었던 그 화장실... 나중엔 변비로 인해 관장약을 넣
어 손가락으로 파내야 했지요. 언니 간호 중 그나마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렵니다.
 
이렇게 언니의 마지막 과정을 정리합니다. 잊혀 지기 전에 생생히 기록해두고 싶었고 이제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며 바쁘게 살아야하니까요. 또 나의 마음을 정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평안 합니다. 언니가 아프지 않아도 되니까요. 천국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테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
지 나의 수호천사였던 사람. 그 언니가 없어 내 삶이 쓸쓸하고 춥긴 하지만 더 든든하고 강해지려고 합니다. 그
게 언니가 바라는 길 일 테니까요. 지금 세상엔 없지만 여전히 더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범사에 잘되기를
기도해 주고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언니를 늘 케어해주고 위로를 주던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봉사자님들과 김승주 목사님, 권경란 실장님, 정태
수 간사님, 주치의 전세현 선생님, 간호사님, 간병사 여사님들,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눈에 보이는 천사이십니다
. 허약해진 나를 위해 음식과 반찬을 싸들고 문병 온 친척들과 내 친구들, 좋은 과일과 음식을 사들고 틈틈이 나
를 찾아와 위로와 힘을 주시고 때론 불러내어 좋은 음식으로 보양시켜주시던 따뜻한 분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기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모두가 사랑의 추억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언니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