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무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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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경 란 전도사
병동 자원봉사자실장
조○○(직장암, 67세, 남)
 
어제부터 길거리가 온통 시끄러워졌습니다. 귀를 양손으로 막아도 들립니다. 열흘 후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 운
동이 시작되는 날이기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세상을 약속하면서…
 
잠시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느 세상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풀들, 크고 작은 나무, 바다, 강, 개울 …그 위에 토끼. 다람쥐가 골고루 어울려져 사는 세상
이 아닐까요?
 
풀인지 나무인지는 몰라도 그런 삶을 잘 살았을 것 같은 분을 이곳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환우분이 소천하
신 후 오랫동안 잔잔한 감동이 남아있습니다.
 
67세 되신 이분은 3년 전 직장암을 진단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일상생활을 하시다가 작
년 2월에 척추로 전이가 되어 방사선치료와 신경차단수술을 수차례 받으셨다고 합니다. 입원 한 달 전쯤 더 이
상은 치료불가 하다는 판정을 받으시고 작년 12월 에 입원 하셨습니다. 입원 당시 허리통증이 심하신데다가 의
식도 혼미하시고 전신부종이 있으셨습니다. 미음정도 드셨으나 그마저도 사래가 들려 못 드시게 되어 많이 힘들
어 하셨습니다.
 
기골이 장대하시고 무뚝뚝 하셔서 대화도 제대로 못해 본채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예배 시간에 심한 허리통증
으로 힘들어 하시면서도 찬송가를 함께 부르셨습니다. 예배 후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박수도 힘껏 치셨습니
다. 마침 보호자를 만나지 못해서 상담을 하지 못한지라 직접 여쭈어 보았습니다.
“교회에 다니세요?”
“아니요. 성당에서 성가대로 섬겼어요.”
이분 때문에 예배시간에 저도 더 은혜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으시도록 봉사자들과 함께 틈틈
이 말씀을 전하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특히 찬송을 불러드리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아는 찬송은 따라하셨습니다. 허리통증으로 두 달여의 입원기간 동
안 한 번도 일어나시질 못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2원 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환우분은 마음이 아주 따뜻하셨습니다.
부인이 오실 때 귤을 사오시라고 하여 본인이 드시는 줄 알았더니 부인이 떠나신 후 슬며시 간병사님에게 쥐어
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 하셨습니다.
그런데 환우분만 아니라 부인 역시 따뜻하셨습니다. 뵐 때마다 겸손해 하셨고, 매사에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셨
는데 애교 없는 투박한 목소리로 “저 영감 저 영감…”하셨지만, 막상 상태가 나빠지시니까 충격으로 입원까지
하신 것을 보고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실 때마다 딸 같은 분이 함께 오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이셨습니다. 20년을 넘게 한집에서 사
셨다고 하는데, 물론 집 주인이 좋은 사람이겠지만 한쪽만 좋아서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 부부의
인품을 짐작하게도 되었습니다.
 
요즈음, 호스피스 병실에서 환우분들의 남기시는 모습은 그분 인생의 열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이
렇게 저렇게 포장하며 살아왔던 모습들이 완전히 무장해제(武裝解除)가 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
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17-18)
이토록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시는 분들이야말로 진정 좋은 나무가 아닐까요?
 
좋은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