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터개원에 즈음하여 *
“기본적인 준공은 필하였지만 내외부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어서 아직은 개원을 못하고 있습니
다.”라는 상황설명에도 불구하고 “너무 답답해서 그래요 한번 들렀다만 가게 해 주세요”하시면서 찾아오신 환우
분 내외분이 계셨습니다. 금년 2월까지도 건강하셨다는 64세의 이분은 유방암을 발견하고 즉시 수술을 받았으
나 항암치료 2개월 남짓 지나서부터는 신체 각 곳으로 전이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백화점에서 의류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생긴 마음의 응어리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봐요.” “하지만
난 아직 암이라고는 생각되질 않아요. 내 몸에 암이 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드릴 수 없어요.” 그분은 절규하고 있
었습니다. 그 분은 큐브러 로스가 정의한바 있는 소위 ‘부정의 단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힘이 들어서 눈을 뜰 기력도 없어 보이던 그분은 그래도 간간히 그간의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저는 묵묵히 받
았습니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일어서는 그분에게 저는 몇 마디의 위로와 함께 그분의 손을 잡고 마음의 평안과 장
래를 부탁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제는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고 가니까요. 다음에 올 때는 찐 옥수수를 가지고 올게요.” 들
어오실 때의 그토록 창백하고 초췌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홍조에 미소까지 머금은 채 쉼터를 나서면서
그분이 남긴 말이었습니다.
 
불시에 그분을 만나 뵌 후 저는 다시 한 번 쉼터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말기 암으로 선고 받은 환우 분들에게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고통은 암성 통증입니다. 그리하여 호스피스 환우
분들에게 제공되는 진통제는 매우 고단위의 진통제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의 고통
은 통증만은 아닙니다. 전인적인 존재로써 경험해야 하는 또 다른 고통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 정서적 동요, 세상이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자괴적 소외감 그리고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는 불
확실한 미래에 대한 차라리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죄책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호스피스운동은 이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지자는 운동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 동안 우리는 1998년부터 시작된 병원사역과 2002년부터 시작된 가정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습니다. 이
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과 추진에 따라 ‘주간보호센터(쉼터)운영’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의 지경을
넓히려고 합니다. 말기환자의 경우, 정신적 충격으로 말하자면 치유불가를 선고 받은 직후가 가장 큰 충격의 기
간이라고 생각됩니다. 쉼터는 그러한 분들을 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입니다. 쉼터는 낮병동형 시설입니다. 텃
밭을 갖춘 전원주택과 같은 따뜻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병실3개, 거실1개, 주방. 화장실2개. 사무실(자원 봉사자
실)1개 등을 갖추고 조용한 휴식과 예배, 기도, 찬양, 상담, 목욕, 족욕, 웃음치료,텃밭 가꾸기… 등의 프로그램
을 가지고 그들이 맞부딪친 엄청난 충격의 완화를 도울 것입니다. 물론 이곳의 이용은 전액 무료입니다. 그러던
중 입원치료의 필요가 느껴질 때에 이르면 인산의료법인 메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의 연계입원이 가능해지
도록 전달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아래는 자리를 일어서는 그분에게 제가 드린 말씀입니다.
“이곳은 당신을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신세진다는 마음은 갖지 마시고 내 집 오시는 기분으로 오시면 됩니다
. 이 집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세상이 이처럼 시끄러운 이유는 저마다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리라고 한
다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절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생을 마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마땅히 보장되어야할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인 것입니다.
 
우리 안.호.선의 설립취지(목표)는 “누군가에 떠밀리듯 힘겨운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진정한 안식은 오직 십자
가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섬김으로 보여주겠다.”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취지에 충실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우려 왔습니다. 이제 쉼터 개원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의 지경을 넓히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이
사역을 감당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천사가 부러워할만한…이토록 아름답고 확실한 하나님나라 확장사업에 구체적으로 몸으로, 물질로, 기도로 함
께 부르심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이곳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쉼터가 되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
다. 감사합니다.
 
비봉쉼터에서 김승주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