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호선 12기 졸업생입니다.

졸업 당시에는 강의를 통해 은혜도 많이 받고, ‘최소한의 봉사라도 해야지' 하는 의무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쉼터 건축에 대해서는 아주 냉담하였습니다. 80세가 넘은 내가 환자들에게 환영을 받을 것인지.. 배척을

당할 것인지 그것도 불안스러운데 쉼터 건립에 대해서는 애당초 인연을 맺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이 너도 나도 천사 성금에 참여하는데도 저는 강 건너 불을 구경하 듯 무관심 했습니다. 구입된 대지 위에 건축

이 시작될 때는 참으로 많은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기도회를 비롯하여 각종 바자회 판매사업, 노동봉사, 물자 헌

납 등 눈부신 일들이 눈앞에 스쳐가고 있었지만, 저는 여전히 미꾸라지처럼 피해 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승주 목사님께서는 저의 이런 행동을 모르는 체 하시면서 저를 금요 오후반 팀장으로 임명

하시고 꺼저가는 심지에 불을 당겨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쉼터 본당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월요팀이 쉼터를 다녀왔었다는 소식도 들려 왔습니다.

그날 이후 병원으로 돌아와서 환우들을 대하면서 여러 환자들이 쉼터를 다녀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많은

이들이 이 곳에 와서 영육 간에 쉼을 얻고 좀 더 안정된 마음으로 지내다가 상태가 깊어지면 메트로병원으로 이

송. 입원하였다가 천국으로 가신다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그 후, 저의 믿음을 바로 잡기 위한 하나님의 채찍이었던지 어느 날 저는 몸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어 사진 촬

영을 하니 척주 뼈 3개가 나란히 금이 가서 가라앉기 직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겁이 나고 두려워서

급히 시술을 하였는데 다행스럽게 경과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퇴원시에 의사 선생님은 집에 가지 말고 요양원에

서의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곳 저곳을 찾던 중, 결국은 봉사를 왔던 이곳을 이제는

환자가 되어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희국 중에 희극이지요. 쉼터 건축을 할 때는 손톱하나 까닥 않고 있다가 달

콤한 그 열매를 따 먹는 데는 제 1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뻔뻔스럽고 비위가 좋고 넉살스러운 저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부끄러움이 활활 타오른답니다.

이곳에 와서 참으로 많이 놀라기도 하고, 회개도 하고, 많이 깨닫게도 되었습니다.

푸르른 정원에 그림처럼 예쁘게 세워진 쉼터.

아담한 연못과 한 여름에 시원스레 쉬며 먹고 즐길 수 있는 야외 식당,

한 겨울에도 여러 사람들이 집회도 하고 쉴수 있는 하우스.

주변에 곱게 손질된 텃밭의 채소들, 맑은 공기,

호스피스 봉사원 여러분.

2008. 9. 6 로뎀나무 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