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자 일지*

지금까지 살아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갈 때가 있다.

평생을 공직자로써 살아 온 나는 나름대로는 ‘충직하게, 열심히 살아 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매우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의 말씀이 생각나게도 한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그런 진지한 생각의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누구나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 왔다면 지난 날에 대한 반추와 더불어 남은 생을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인생으로 마무리 지어 갈 것인가’로 고민하게 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여서 그런 생각으로 기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아 ‘왠일인가? 궁금해 하던 차에 그가 메트로병원에 입원 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간암으로 투병 중에 있었다.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방문에 “면회사절” 푯말을 붙여 놓았다. 그를 보면서 그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지경에도 친구로써 해 줄 수 있는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 복도에서 우연히 호스피스 봉사자 조끼를 입은 후배를 만났다.

대화 중에 호스피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동참 권유를 받았지만, 선 듯 마음에 와 닿지 않아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남은 생을 보람있게 살고 싶다’던 생각이 스치면서 문득 ‘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소뿔도 단김에 빼라”는 생각에 그 길로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 받는 내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분들에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3개월의 교육 후 “기왕이면 한번 해 보자”는 동기 박덕출 집사님의 동참 제의를 받고 용기를 내었다.

그후. 수요 B팀에 합류하여 선배 기수들의 지도를 받으며 부족한 부분은 채워 가고 있다.

팀 내의 따뜻한 분위기와 갖가지 배려는 긴장되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환우와의 만남도 한결 부드럽고 친근감을 갖게 되었고 부담없이 목욕, 마사지 가끔 원하시면 찬양도 해드린다. 간혹 맑은 공기를 마시고자 하는 분은 휠체어로 병원 경내 구경, 그리고 무료해 하시는 분께는 말벗으로 시간을 메워 드리기도 한다.

한주 한번씩 봉사하는 날. 병실 문을 열면 지난 주에 섬기던 분들이 보이지를 않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어디로 가셨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부르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정말 무상하구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래도 생존해 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려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안호선과 관련을 맺은지 벌써 6년차가 된다.

그간 동역자 피차간의 따뜻한 배려와 지지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호스피스 현장에는 교훈이 많다.  그 교훈들을 생각하며 ‘호스피스 봉사하기를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호스피스 현장은 절체절명에 처한 분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매우 뜻 깊은 것이지만, 동시에 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진지한 교육장이 되기도 한다.

나의 남은 생이 얼마 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착실한 준비로 막상 그날이 온다고 할 찌라도 불안하고 초조해 할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 답게 당당하게 맞고 싶다.

그리고 그 날을 맞기 까지 나머지 시간은 그동안 받은 은혜를 하나 하나 충심으로 갚아가는 기회로 삼고 싶다. 일단 부르시면, 그 즉시 다 떠나가지 않던가.

또한 호스피스 현장은 그동안 그저 당연시만 여겨졌던 가족들의 소중함을 날마다 일깨워 준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고, 준비하며 살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고 있다. 모든 영광 우리 주님께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