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 이곳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돌봄을 제공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돌봄이란 고통을 완화시켜주고 여러 측면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 정신적, 영적인 총체적인 고통이 존재하여 한 인격체을 파괴시킨다. 이러한 환자를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자원봉사자들의 팀 접근을 통하여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 지금은 그래도 아는 분들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생소 할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스피스하면 생의 마지막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여서 호스피스라는 말을 본인에게 꺼내기조차 미안해하는 가족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곳에 나의 가족을 차마 보낼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힘들어 한다. 그러다가 참기 어려운 통증으로 인해 통증완화를 위해 오시기도 하고 가족이 돌보다가 지쳐서 오시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오게 된 병동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호스피스 팀들의 돌봄을 받게 된다.
그리고 통증에 힘들어하던 환자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기도 하고 마음을 열고 요법에 참여 하면서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기도 한다.
자원봉사자님들의 발마사지를 받으면서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남은 시간들을 가족들과 함께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진다.
이런 시간을 가지며 환자와 가족들은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말을 한다.
사별 후에는 고인을 함께 생각하며 고마움을 얘기하러 찾아오는 가족도 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에서 근무한지가 3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병동에서 호스피스 환자들을 계속 보아왔지만 병동으로 독립되어 돌보게 된지는 삼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병동을 시작할 때 쯤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선뜻 나서는 간호사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에게 호스피스 병동 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였던 것 같다. 나로서도 심적으로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정말 부족한 나이지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 드렸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참 어렵게 시작한 일이기도 했다.
오직 나의 생각으로만 하지 않게 하시고 때때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서는 해나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 이곳의 하루는 절박하게 움직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퇴근 인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여지는 날들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병실의 환자분 이름을 확인한다.
출근 할 때마다 나의 예측이 맞아 들어가지 않았기를 바래보지만 이름표가 빠져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래서 환자에게 해야 할 일이나 말이 있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바로 해야 한다고 보호자들에게 말해주곤 한다.
환자분들은 우리를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 시작을 환자의 임종으로 시작하는 날이 너무나도 많다.
한쪽 병실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가족의 슬픔이 있고 한쪽 병실에서는 힘겹게 밤을 버텨낸 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곳.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돌봄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돌아보면 환자분이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아내에게 그동안에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대신 아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눈물 흘리는 남편, 그런 남편을 안아주면서 함께 우는 환자의 눈물을 기억한다. 또 딸을 먼저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애끓는 아픔과 자신이 힘든데도 남겨져서 슬퍼할 어머니를 오히려 걱정하며 눈물 흘리는 자식의 아픔도 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슬픔을 견뎌가고 웃으면서 추억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가족을 보면서
여기엔 슬픔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동 그리고 행복함이 존재함을 새삼 느낀다.
어느 때보다도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면서 나의 삶을 잠시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때로는 지치고 힘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환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가족을 대하면서 슬픔을 같이하고 아픔을 위로하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좋은 삶을 살아야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죽음에 대해서 가시와기 데쓰오(생명에의 시선의 저자)는 삶의 말기에는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평안이 영혼에 온전히 임할 때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심을 믿고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알고 행하려고 노력한다. 길이요 생명이신 구원의 주님의 돌보심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에 함께 하는 환자와 가족들과 팀들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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