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님(간. 89. 여)
“늘……”
이 한 글자가 표현하고 전달하는 이야기에는 많을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늘 생각했습니다.”
“늘 보고 싶었습니다.”
“늘 좋아했습니다.”
잠시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이 이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함께하지 않았더라도 생각하고, 보고 싶었다는 말 앞에 ‘늘’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언제나 내 머릿속 한구석에 사랑하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에 있었다하더라도 항상 그대가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었음을 한 글자로 줄여서 ‘늘’이라는 단어로 표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침상에 있는 환우 분들을 찾아가 문안하며 같이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 만난 박○옥님은 소녀와 같은 모습으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거동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육신 가운데 계셨지만, 눈빛만은 반짝반짝 빛이 나보였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 속에서도 따뜻한 대화가 오간 후, 그분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더니 이제는 저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시는게 아니겠습니까? 한참의 기도를 끝낸 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시고는 담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내 마음속에 계십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며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을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손을 꽉 잡고 환하게 웃으시는 그분의 얼굴에서 “작은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외로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가운데 계신 주님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반드시 다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지신 예수님이시라면 한편으로는 환한 미소를 띠고 계셨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통증으로 밤을 설치는 일이 많음에도, 움직일 수 없는 육신의 답답함과 연약함에도 확신과 담대함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그분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믿음은 ‘늘’ 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침상위에서 어두운 밤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고통으로 잠을 못주무시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도 그분의 마음에는 주님이 늘 함께 했던 것입니다. 몇 일 후, 그분은 그토록 사모하시던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셨습니다.
힘든 침상위에서도 환하게 웃으시던 그분의 미소는 이제는 천국에서 그 모든 것을 바라보시며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늘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우리는 참 행복하고 기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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