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언젠가 또 한분의 환우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이분은 침대에 앉아 계시며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집은 제사 지내는 집안인데 예수쟁이 며느리가 들어와 제사를 안 지내니 내가 신경을 너무 써서 이렇게 말랐다우”
“네? 어머님 그러세요?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어요? 근데 전 개인적으로 어머님이 너무 부럽네요.” “저희 며느리도 예수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그리고 어머님이 마르신 연유는 다른데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언짢아하진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은 예배도 끝나고 음악선생님도 다녀가시고 어머님은 침대에 앉아 노래를 부르십니다. 그 중 에델바이스의 노래를 “Bless my homeland forever” 원어로 부르셨습니다.
“그 연세에 목소리 정말 좋으시네요?” “여학교 때 합창부에 들었어”
“네~! 어쩐지요. 그 좋은 목소리로 찬양을 부르시면 더 좋을거 같아요. 오늘 예배가 어떠셨어요? 예수 믿을 생각은 해 보셨어요?”
“우리 어머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예수를 믿으면 안돼지. 나중에 조상을 어떻게 봐?”
전 김승주 목사님의 말씀처럼 정면돌파를 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은 찬양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전 너무 놀라 “Wow! 찬양을 알고 계셨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여학교가 미션스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어쩐지. 너무 멋있어요! 이제 며느리가 믿는 그 예수를 믿으시는 게 어때요?” 의중을 물으니
“당신은 조상도 없어?” 하시며 화를 내십니다.
“어머니! 이젠 지난 날에 집착하지 말고 애들하고 잘 지내시는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봉사를 주 단위로 다니다보니 한 달이 훌쩍 넘어가게 됐습니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틈틈히 믿는 거 생각해보셨어요?”
“목사님도 두 번 다녀 가셨는데 나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가셨어!.”
“그렇지요? 목사님 아니라 더 한분이 오셔도 어머님이 이렇게 완고하시니 감히 누가 어쩌겠어요? 말할 사람이 없죠. 모든 게 어머님 마음에 달렸으니까요.”
그런데 또 한주를 넘겨 돌아 와 가보니 칠판에는 ‘장○호님 병상세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전 침대로 다가가 어깨를 만지며 “결정 잘 하셨어요” “세례 축하드려요.” “이제 어머니는 하나님의 딸이 되신 거예요.” 축하를 해 드렸습니다.
이젠 기력이 많이 쇠하여 지신 어머님은 온 몸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미션스쿨 출신이시니 복음에 대하여 생각을 안해 보셨을 리 없지만,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결정을 미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 팀 외에 다른 팀에서도 헌신적 돌봄과 함께 꾸준히 주님의 사랑을 전하셨을 것이고, 그 아름다운 결과를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옛말에 ‘마을에 노인 한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했다고 합니다.
수일 후, 어머님은 조용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고, 또 하나의 소중한 스토리가 담긴 도서관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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