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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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보호자 : “그런데 연세도 많으신 거 같은데 이렇게 봉사하기 힘들진 않으세요?

                   저희가 너무 염치가 없습니다”.

 

자원 봉사자 : “염치는요. 엄마는 이 곳에서 잘 계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는 이 곳에서 몸 편히 있을 수 있어 좋고 보호자는 그래도 마음을 놓을

                   있어 좋고 우린 봉사할 수 있어 좋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바람이 차네요.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요?”

 

우리 수요 B팀에서 올렸던 연극의 한 꼭지입니다. 이호칠님은 이 역에 딱 맞는 분이셨습니다.

맡으신 배역의 이름도 호스피스 봉사자.

그런데 이제 그 분이 안 계시네요.

호스피스 사무실 문을 열면서 호탕한 음성으로 안녕하세요! 하던 모습을 다신 뵐 수 없다니.

 

제가 그 분을 만난 지 십삼 년.

그 분의 팔십팔 년의 세월 속에서 어쩌면 아주 짧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발맛사지를 가르쳐 주신 선배님으로 그리고 수요일 오후면 함께 웃으며 어울리던 친구로 언제까지나 곁에 계셔 주실 줄 알았나 봐요.

 

저는 그 분이 다른 곳에서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신다는 얘길 들으면서 그 분의 헌신하는 봉사 인생을 그저 대단하다 잠시 생각할 뿐인 땡땡이과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우리 팀에서도 가장 고령이시지만, 단 한 번도 나이를 내세워 대접받기를 바라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팀원들이 먹은 그릇 설거지도 먼저 팔을 걷고 나서는 분이셨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할 때는 나이를 잊고 친구처럼 지내다가 병실에 들어서면 환자를 전심으로 위로하고 케어하는 모습을 보며 때론 건성으로 왔다가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분도 우리 이호칠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분이 어떤 아버지였는지 어떤 지아비였는지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인지 어떤 계기로 봉사의 삶을 살게 됐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아는 건 누구에게도 당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것과 이 시대 가장 어렵다는 참 어른으로 사셨다는 것.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으셨지만 저희에게 내색 않고 꿋꿋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죠. 그리고 올여름 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후 이 곳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오시기까지 너무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당신이 십육 년간 봉사하신 병실에 눕게 되는 이 현실을 과연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역시 당신은 의연하게 받아 들이셨습니다.

오히려 툭하면 눈물바람이 되는 저를 애써 못본 척 해 주셨죠.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아 있을 때 작은 파티를 열자고 해주신 권경란 실장님 그리고 최지은 사회복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눈물과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당신도 잊히겠죠.

그러나 전 오래도록 당신을 그리워할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단 하나.

호스피스병동에서 삶을 마치신 환자 중 한 분이 아닌 우리들의 영원한 큰오빠를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파티하면서 저희가 보낸 편지는 맘에 드셨나요?

우리가 천국에서 만날 때 꼭 마중나와 주세요!”

, 새끼손가락 걸어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