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와 미술치료를 통한 환자들과의 만남을 이어오면서 느끼는 마음을 한 가지만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그건 아마 ‘부족함’ 일 것이다.
한해 두해 시간이 쌓여 어느덧 15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늘 연말이 되면 뭔가 더 좋은 내용으로 수업하고 상담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방과 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다른 외부 수업에서 성인들을 지도하면서 채움을 경험하고 있다면, 병원에서 환자들과의 만남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마음을 늘 허전하게 한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대화 나누며, 문득 도움이 되려고 하는 손길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이런 나의 마음에 작은 변화를 주는 일이 있었다.
6개월 전쯤, 주변 지인중에 친정어머님이 말기암인 친구가 메트로병원을 의뢰해 왔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며 통증 때문에 잠 못드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당장 병원에 전화를 하고 상담을 연결 시켜 드렸다.
상태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눈뜨고 소통하시는 건 거의 불가능하셨고 식사하시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방문할 때 마다 주무시고 계셨고 손을 잡아드리면 잠시 눈을 뜨셨지만 곧 다시 눈을 감고 주무시기 시작하셨다.
그림을 함께 보고 손을 움직여 작업을 한번이라도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편안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보며 손잡아드리고 얼굴 한번 쓰다듬어 드리는 것으로 방문을 마치며 보호자인 친구와는 말없이 인사하고 돌아서길 한달.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 전 6월 어느날, 환자분은 가족들과 인사 후 고통 없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안타까운 마음에 조금만 더 버티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 친구의 손을 잡고 “속상하지?”라고 물었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너무 잘 주무시다가 가셔서 행복해”
생각해 보니 메트로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님은 계속 주무셨다.
밤에도 낮에도 아기처럼 잘 주무셨다.
어머님은 병원에 오시기 전 몇 달 동안 잠을 편하게 주무신 적이 없었다.
늘 온몸을 파고드는 통증에 시달리며 가족들에게 짜증내시고 고통스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고 오셨지만 친구의 결단으로 마지막 한 달을 푹 주무시고 가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무언가 꼭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 결핍된 곳을 채워 드려야 한다는 생각, 눈에 보이는 도움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푹 주무시고 가시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이라는 단어는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마무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운 마무리에 바닷가의 한줌 모래알 같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나는 나의 역할을 다 했다고 본다. 환자들을 만나는 나의 발걸음에 ‘부족함’ 대신 ‘행복’이라는 단어를 새겨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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