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자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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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표현 못해도 표현하리라 나 닮지 못해도 닮아 가리라 그 사람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찬양 가사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닮아가고 싶어서 2002년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허락받은 귀한 생애를 마치고,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환우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사역은 너무나 소중하고, ‘거룩한 사역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잠시 쉼의 시간입니다.

그동안 같이 울고 웃던일들을 뒤돌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용히 말을 걸고 찬송을 부르며 복음을 전할 때 잘 받아주시며 좋아하시던 환우분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아내 분은 저희의 영적 접근을 싫어하셨습니다.

이럴 때는 봉사자들은 난처하기도 하고, 자칫 의욕을 잃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실망치 않고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주님께서는 마음에 곧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얼마 가지 않아 그 환우 분은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할렐루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가정호스피스로 섬기던 이O성 할머니(신장암. 80)도 기억에 남습니다.

건강하실 때는 교회를 잘 다녔지만, ‘몸이 불편하면서부터 교회를 나가지 못해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노라는 말씀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저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댁을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 곤 하였습니다.

할머니의 큰 아드님은 군대생활 중 사고로 장애를 입어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가끔 집에 오시면 저희와 함께 예배도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아들에 대한 애틋한 생각에 '다음에 천국가면 내 아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라고 물으실 때는 직접 답변할 입장이 못 되어 안타까웠습니다.

 

메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 입원을 하여 이곳에서도 저희의 돌봄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정에 울적하게 혼자 계실 때보다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로 활기 찬 분위기를 접하시면서 표정도 훨씬 밝아 지셨습니다.

후에 전해 들으니 할머니는 아드님과 함께 임종예배도 드리시고 평안하게 소천하셨다고 했습니다. O성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어린아이그대로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0:15) 아멘.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섬기며, 생명을 전하지 못하게 됨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때와 시한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에’(1:7) 오늘도 우리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님! 하루 속히 이 땅에 환란이 떠나가고, 돌봄과 복음을 통하여 영생 주시기로 작정한 영혼들’(13:48)이 주님께 돌아오며,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평안을 누리는 날이 속히 다시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