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 교육을 마치고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환우들을 만나 봉사를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갈등하며 경험한 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봉사한다는 자존감(?)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봉사가 안호선이 지향하는 선교목적에 어떤 유익이 될까? 하는 의문이었고, 또 하나는 환우분들에게 내 봉사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병동의 정서가 너무나 침울하고 소망없이 누워있는 침통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봉사가 즐거움이 아니라 마음이 우울해지고 무거워지는 마음을 감내하기 힘들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갈등하면서 인내하며 1년여 기간을 보내면서 일찍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십 수 년 동안 묵묵히 봉사하시는 선배 봉사자분들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생각도 많이 바뀌고 봉사에 임하는 자세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 받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주님 앞에서 내가 설 자리를 찾기로 마음을 다짐하곤 했습니다. 한편 팀원님들과 정이 들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한주 한주 봉사를 하면서 그래도 한 날의 일과를 잘 마친 것 같은 마음에 위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의 자리가 내가 서야할 자리라고 마음을 굳혀 갈 무렵, 금년 2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책 없이 봉사의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거리두기 행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공권력 위반 죄목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회는 문이 닫히고 예배는 비대면 예배가 교회 예배 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짧았던 봉사기간 뒤돌아보니 그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봉사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받은 은혜가 더 컸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내 자신의 영혼을 진지하게 묵상하며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는 문제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죽음의 에티켓을 읽으면서 내가 죽는 과정을 낱낱이 펼쳐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은 죽음의 에티켓을 임상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떻게 나의 아름다운 임종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인데 내가 그 자리에 눕기 전에 아직 봉사할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남을 봉사할 수 있는 것, 이보다 더 큰 감격과 보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그 길에 먼저 서 있는 가장 연약해진 호스피스 병동의 생명들에게 꺼져가는 마지막 심지를 떨리는 손으로 보듬어 보려는 심정으로 환우들을 찾아 갔었지만, 아쉬운 것은 서로 인격적으로 더욱 친밀하게 환우들 곁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한계도 있었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낮은 자리요 지혜로운 자가 찾는 다는 초상집 근처쯤 되는 호스피스 병동 봉사의 길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를 삼았고, 한 주간 스케줄에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라는 ‘일과표’가 있었는데 어느새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그 일과표가 사라지고 없어 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봉사의 처음 열정이 식어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봉사의 그 날이 속히 돌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호스피스 봉사자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한 일을 위하여 힘과 기회를 달라고 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서 속히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예전처럼 자유로운 봉사의 그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일선에서 갑절이나 심혈을 기울이며 안호선을 위해서 헌신하시는 회장님과 선교회 스탭진 모든 분들과 자원봉사자 모든 분들께 평강을 기원하며,
끝으로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시로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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