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해 집사0
안양제일교회 제2기 자원봉사자0
 
99년 11월 1일
한해도 다 저물어가는 11월 첫 날.
만나고픈 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길엔 은행잎이 노랗게 수놓고 있었다. 한 주간 내내 기다렸을 이들이기에 가는
발걸음이 바빠진다.
어젠 이ㅇ분 할머니께서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더니, 오늘은 김 ㅇ 학 할아버지께서 천국으로 이사가셨다. 매 예
배시간을 사모하여 기다리시던 할아버지이셨는데 임종예배 가운데 소천 하셨단다.
"저 천국에서 만나면 모른 척 하지 말자고 약속했는데..할아버지, 할머니 샬롬! 큰딸,작은딸이 왔어요"
텅 빈 침상을 바라보며,그 동안에 틈틈이 기록해 둔 메모지를 꺼내본다. 장면 장면이 새롭다.
 
99년 ㅇ월ㅇ일
할머니는 치매기가 있었다. 오늘은 화장실을 자주 가신다. 치아도 시원치 않은데 마구 잡수셔서 탈이난 모양이
었다. "할머니! 변을 잘 보셔야죠. 제 손에다 변을 보면 어떻게 해요. 할머니 맴매할 거야!"
"맴매하지마" 봉사자 파트너인 류집사님과 할머니의 대화이다.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할머니를 재미있게 해
드리려고 재롱을 부리는 모습...
식사후엔 휠체어 타고 산책을 하니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99년 ㅇ월ㅇ일
치매기가 있는데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밖에 나가는 일이었다. " 왜 안 데리고 가?" 발음도 정확치않게 하시
는 말씀이지만 간절했다. "오늘은 할머니를 VIP로 모시겠습니다.
류집사님 익살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를 차에 모시고 병원을 나섰다. 할머니는 밖을 자세히 살펴 보셨다. 신기한
듯이 두리번거리시더니 " 집에 가" 하시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놀라며 "할머니 집은 어딘데요? "하자 아무 말이 없으시다 . 살던 곳이 생각나셨나 보다.
안양 병목안 울창한 숲 나무그늘에 자리를 깔고 할머니를 눕혀드렸다. 오가는 사람들이 유심히 바라봄도 아랑
곳하지 않고 맑은 공기를 실컷 마셨다.
"할머니 이제 가요"
"안가"
"친구들이 기다려요. 가요"
할머니는 "어" 하신다. 모시고 병원에 돌아오니 평안해 하셨다. 숙제 다한 아이처럼 가벼운 마음 이었다.
 
99년 ㅇ월ㅇ일
"숙제 검사를 해봐야지요. 잘하셨나요?" 잘 했다고 하신다. 그 숙제란 힘든 병상 생활이지만 옆, 앞 침상의 환우
들을 향한 아침, 저녁 인사를 가르쳐 드리고 꼭 실천하시는 것이었다.
"원재 형님 샬롬! 묘동 형님 샬롬!" 실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비는 인사이다.
 
99년 ㅇ월ㅇ일
추석 명절에 집에 다니러 가신 분도 계시니 병실이 썰렁했다. 할앙버지는 가족의 권유에도 안 가셨단다. 열이나
고 머리가 아팠는데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해 주시고 대화를 나누고 나니 통증이 사라졌다
고 하신다. 발 맛사지를 하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드리니 신이 나셨다. 호스피스를 알았을때 깜짝놀랐으며,
진작 신앙생활 못한 것을 후회했노라고 하신다.
 
99년 ㅇ월ㅇ일
오늘은 머리를 감고 싶어하셔서 머리를 감겨 드렸더니 매우 개운해 하셨다. 힘이 드셨던지 예배시간에 잠깐 주
무셨다. 예배후에 "목사님 죄송합니다.여간해서 예배시간에 안 자는데 깜빡 졸았습니다.
졸려도 참고 기다리며 예배시간을 기다리는데...'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이 우리 마음까지 깨끗하게 하는 것 같았
다.
 
99년 ㅇ월ㅇ일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내내 적적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할아버지!" 하며 병실 문을
들어서자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하신다. 몹시 수척해 지셨다. 따뜻한 물에 발을 씻겨 달라고 하셨다. 따뜻한 물
에 발을 담그니 매우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따뜻한것 아닐까? 정성껏 예배드리시는
할아버지는 영락없는 하늘 백성의 평안한 모습 그대로 이었다.
"하나님! 이분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로 짐을 나눠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많이 질 것을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대로 사랑을 실천
하게 하소서.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