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을 수 없는 천사들

(사별가족에게 온 편지)9

진 ㅇ 재7

오늘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참기 어려운 아픔속에서 투병하고 계시는 환우들을 위하여 사랑과 헌신으로 애쓰시

는 목사님, 수간호사님을 비롯한 모든 봉사자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지난 2월 호스피스 병동 509호실에 입원해서 3월 17일 천국으로 소천한 진ㅇ옥 환자의 남편입니다.

작년 6월 초, 우리 가족은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A병원에서 근 9개월간 모진 항암치료를 받은 보람도 없

이 세 번째 배복수술을 집도한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이제 더 이상은 손쓸 방법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정신

이 혼미해지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튿날 수술결과를 묻는 아내에게 고뇌와 망설임 끝에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었고 아내는 눈물이 핑돌 뿐 태연

한 척하며,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한 가닥의 희망조차 사라진 그 순간에도 자신의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

려 애썼지만 그런 아내의 마음이 저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린 후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 뜻에 맡기고 의지하자고 다짐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봉사자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서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국을 향한 하루하루 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 병동에 근무하는 모든 분들이 아름답게 보였고, 매일의 예배시간을 기다리면서 많은 것을 배우

고 느끼면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살아왔나? 남을 위해 무엇을 했었나? 반성하며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입원하는 날 옆 침상의 박ㅇ녀 환우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잘 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에요"

이 말이 사실임을 인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새벽, 건너편 병상의 환우께서 "간호사!"하고 외치는 바람에 저는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간호사가 황급

히 달려와 용건을 물었고, "슬리퍼가 없다"는 말에 병상 밑까지 멀리 밀려간 슬리퍼를 집어 "슬리퍼 여기 있어요

권사님 !" 하며 가지런히 챙겨놓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기심이나 자존심을 다 버린 간호사님의 언행을 보면서 환자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예에 지나지 않으며 그 후로도 모든 일에

서 친절과 사랑으로 헌선적으로 노력하는 모든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고마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희

들은 여러분들의 그런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아무런 보답도 못했습니다.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하

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훗날에 있을 크나큰 상급을 준비해두고 계시겠지요. 그것

이 또한 저는 부럽습니다.

저는 지금 그동안의 여러 가지 일 처리를 대충 끝내고 이제 좀 숨을 돌린 참입니다. 문득 문득 헤어진 아내 생각

이 떠오르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군요. 지금도 그곳 병상에 있을 때의 아내가 자신의 고통은 접어둔 체 사후에

남겨질 남편걱정으로 눈시울 적시던 것을 생각하면, 기쁨과 슬픔과 사랑으로 쌓아온 40년 세월동안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며 회한에 젖게 됩니다.

거의 두달 동안 오로지 정맥주사만으로 연명하며 조용히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며 쇼크상태에 빠

진 후 더 이상 남편이나 가족들 고생시키지 않으리라 작정이나 한듯이 가족들과 전도사님 , 간호사님의 기도와

찬송속에서 아픔도 슬픔도 없는 천국으로 조용히 가버린 아내... 그 사람을 다시 만니기 위해서라도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더욱 믿음을 키워 천국의 변두리에라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야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목

사님, 간호사님 그리고 소속되어 있는 모든 봉사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었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모든 분들께 충만하시기를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2001년 4월 고 진ㅇ옥님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