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효정 간호사9
메트로병원 호스피스 병동9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를 때가 많다. 나는 당장의 눈앞의 것만 보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기
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그랬구나" 하면서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처음 병원생활을 수술실에서 시작했던 나는 병원을 두번 옮길 때도 계속 수술실에서 근무하길 원했었다. 그러
나 번번히 내 뜻과는 달리 내과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엔 심적 갈등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과
병동에서의 일도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과병동에서의 지난 4년8개월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호
스피스를 생각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오래전부터 호스피스 간호사로 계획하셨고 훈련시키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메트로 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처음 설 때부터 나는 초창기 멤버 간호사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같이 합류할 수 없었고 1년이 지나서야 합류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하나님
은 내게 호스피스에 대한 소망과 간절함을 주셨다. 그리고 기도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나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에게 동정심이 아니라 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병들고 외롭고 죽음을 눈 앞에 둔 이들에게 무슨 평안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경험할 때가 많다. 종종 우리 환우분이나 그 가족들은 이런 얘기로 우리를 기쁘게 한다
"여기가 천국인것 같아요"
겨위 1년간의 호스피스를 했는데도 그 동안에 많은 가족을 천국으로 보내어 드렸다.
그가 떠난지도 6개월이 지났다.
38세에 젊은 나이의 간암 말기환자...
그가 특별히 더 생각나는 건 그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외로운 고아였기 때문이리라.
어릴 적에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그의 나이 세 살때 아버지로 부터 버림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입원할 때도 그는 보육원 친구들과 함께 왔다.
배가 조금 아프다고 했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져 진통주사를 맞아야만 했고 특별히 진통이 심했
던 밤을 보낸 후에는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 주세요 너무 아파요" 하며 힘들어도 했지만 잘 참아 주었으며, 통증
이 전혀 없는 밤을 보내고 난 후에는 "어제밤에 너무 잘 잤고 지금 컨디션이 딱 좋아요" 하면서 순진하고 귀엽게
웃곤 했다. 입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알코올 금단증상으로 밤 근무자인 간호사를 꽤나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순진하고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다.
어느 날 밤인가는 그의 링겔 주사를 살피러 갔을 때 그가 보육원형에게 사과하는 말을 들었다.
"어이구, 형. 미안해." 아마도 그가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형의 다리를 밟았나 보다. 마치 38살 먹은 어린이를 보
는 것 같다. 수액이 너무 빨리 들어가는 것 같아서 조절해 주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왠 박수예요." 하면 "고마워서요" 한다.
옆에 있던 보육원 친구가 말한다. "짜식 애교는 많아"
간호사님들 수고에 보답하고자 저녁을 다 먹었다며 마치 동생이 누나에게 보고하듯 자랑하기도 했다.
 
2001년 1월 9일 저녁에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식을 했다. 담임목사님과 그를 돌보아 주는 하
나님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그는 가족이 없다.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그러나 그의 곁에는 늘 보육원 친구
들이 있었다. 어떤 피붙이의 형제보다 친구들은 그에게 잘했다. 언제부터인가는 보유원에서 같이 자란 누님이
와서 그를 돌본다. 누님의 집은 전라도 담양인데 그를 돌보기 위해서 남편의 양해를 구하고 왔다는 것이다. 정
말 어떤 누나가 가족을 멀리 두고 동생의 간호를 위해서 짐을 싸들고 올 수 있단 말인가. 며칠이 될지도 모르는
데...
가까이 있어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텐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일까?
그러나 그들의 쏟아 붓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2월 6일 낮 , 그는 임종실로 자
라를 옮겼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모두 모였을때 "이제 보고 싶은 사람 다 보았으니 됐다." 면서 마지막으로
안구기증을 약속했다.
 
성공적인 삶은 나누어주는 삶이 아닐까? 오래오래 사는 삶만이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나눠주는 삶이...
임종실로 옮기고 난 후 목사님, 교회식구들, 친구들이 모두 그를 위해서 찬양을 했다. 그날 따라 성결대 나무십
자가 찬양 봉사단이 오는 날이라 많은 학생들이 축복송을 불러주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것 같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사랑 받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그 괴로움을 술로 달래다가 병을 얻었고,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하게되니 무슨 사랑
을 받고 무슨 복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서, 많은 이들의 눈물 속에서 그리고 축복속
에서 그는 이 세상의 삶을 정리했다.
큰 사랑 받지 못한 자가 아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자였다. 하나님은 가족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그에게 베풀어 주셨다.
임ㅇ 섭님은 그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했노라고 했다. 그 용서가 쉽지는 앟았을 텐데... 아마도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지금도 문득 문득 혼자서 휄체어를 끌고 가는 모습이, TV에 나온 숭어를 보며 숭어 잡으러 가자고 웃던 그의 해
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 형 미안해." 그의 목소리도 내 귀에 오래도록 남는다. 호스피스가 아니면 만나지 못했
을 나의 소중한 사람들. 그들의 끈과 나의 끈은 천국이 있기에 영원히 끊어지지 않으리라.
언제인가는 이루워질 그들과의 해후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