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진 간사
(메트로 병원 호스피스 병동)
 
2001년 3월 나는 안양호스피스 5기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척추를 다치
고 메트로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인지라, 많이 당황했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 사역에 동참 시키고자 하는 하
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입원을 하였고 보름쯤 지나서부터는 허리 보호대를 차고 본격적
인 호스피스를 시작했다.
호스피스 초년생이었던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손쉽게 환우들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얻은 아이디어가 '발을 닦는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침저녁으로 다니면서 "발 닦아드릴까요?"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2001년 4월 17일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이수(51세/남)님과의 만남은 나로 하여금 이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계
기가 되었다.
그는 폐암말기로 입원하셨는데 입원하시던 날부터 굳어 있던 얼굴이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또 며칠이 흘러도 변
함이 없던 분이었다. 그는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많이 힘들어했는데, 특히 호홉곤란과 엉덩이 꼬리뼈 부분에
욕창과 사타구니에 안쪽에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어 다리에 많은 통증을 느끼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목욕시킬
때면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폭탄 다루듯이 긴장하며 목욕을 시키곤 했다.
대부분의 환우분들이 목욕을 하면서 마음이 열리는 것과는 달리 그는 목욕 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닫혀서 대화
의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마음을 닫게 하는지...
 
나는 좀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다가서기로 했다. 우회적 방법으로 병실에 들어가지만 그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우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러기를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유심히 봉사자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시더
니 "다리 좀 주물러 주실래요." 하며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때다 싶어 얼른 다가가 다리를 주물러 드리니
"참 좋은 일 하시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하며 말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힘든 호흡을 고르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어요. 여기가 천국 같아요. 목욕시
켜 줘, 발 주물러 줘, 대소변 받아내 줘, 때로는 너무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처음 볼 때부터 웃음 띤 얼
굴로 평안하게 대해주는 집사님 모습이 참 좋았어요. 저도 퇴원할 수 있다면 집사님들처럼 같이 봉사하고 싶은
데...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죠." 하며 힘없이 말끝이 흐리신다.
이수님은 전자대리점을 하며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권사님이었고, 형
님은 안수집사님이며, 자신과 부인도 신앙생활을 했었지만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세례도 받지 못한
체 교회를 떠나 지금까지 안 다녔다고 한다.
1998년 IMF때, 대리점 문을 닫으면서 술과 담배로 낙을 삼다보니 몸도 마음도 망가져 병까지 얻게 되었고, 보
이는 것마다 부정적이다보니 봉사자들이 봉사하는 것도 옳게 보이지 않고,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 남 보기
좋으니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비뚤어진 시각으로 대했는데 일주일 동안 두고 보니 더러운 것들을 치우고 힘들
어 보이는 일들을 해도 얼굴이 밝아 보이는 것을 보고는 생각을 다시 고쳐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나이가 5년 많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며 많은 이야기를 건네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죽는 순간의 고통과 두려움에 대하여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이 복음을 전할 때로구나'
나는 그에게 우리가 죽은 후의 세계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모든 죄를 회개하면 다 용서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자
녀됨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복음의 내용에 끄덕이더니 영접기도를 따
라한다.
그때부터 그는 예배 때마다 욕창과 다리통증 때문에 일어나지는 못해도 누워서 정성껏 예배 드리는 모습을 통
하여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2001년 5월 4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형님, 많은 봉사자들의 축복 가운데 목사님의 집례로
세례를 받으시고, 2001년 6월 26일 평안한 가운데 믿음의 식구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들으시며 51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나는 2001년 8월부터 안양호스피스의 간사로 전적인 '호스피스'가 되었다. 막내 동생 같은 환우분에서부터 아
버지 같은 환우분에 이르기까지... 마주 보아주며 같이 걷는 것이 나의 직업이 된 것이다.
이제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하는 일 가운데 나를 준비시켜 갈 수 있는 귀한 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