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권사
(제 5기 봉사자회 회장)
 
저희 몇명은 한달에 한번씩 신림동에 사시는 독거노인,장애자분들께 일주일치 반찬을 해다 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 할머니의 외손자 되는 용문이란 청년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
머니는 재가 하셔서 그 이웃에 살고 계십니다. 더구나 그 아이는 간질병이 있어 언제 어느 때에 발작을 할 지 몰
라 직장을 다닐수도 없어 교회에서 가끔씩 잡일을 해주고 용돈을 받고 지냈습니다.
어머니와도 살 수 없고, 외할머니도 몸이 불편하신 데다 여든이 넘으신 연세라 같이 살수도 없고 해서 혼자서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 정말 방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이불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다 필 정도인 지하에서 혼자
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재작년 가을에 할머니를 갖다 드릴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홍시를 따느라 우리 집에 와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그 아이 외할머니 집을 방문하였는데 방이 두개인 집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집이래야 마루에 문도
제대로 안 달려 있는 무허가로 지은 집들이지만 용문이가 와서 짐도 정리해주고 했는데 자기가 그 방에 와서 살
면 안되겠냐고 했답니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몸도 성하지 않는 데다가 그 집이 언덕 꼭대기에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고 담벼락이 깎아지르는 듯이 되어있고 이층 계단은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어 손자녀석이 발작을 해
서 굴러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어 거절을 했다고 하면서 울먹울먹 거리셨습니다.
그 날도 발작을 해서 혼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외손주 녀석이 불쌍하다고 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크다고 하면서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도 안돼 들은 소식은 그 아이가 혼자 방에 있다 발작이 일어나 기도가 막혀서 죽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것도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운동화를 줄려고 몇 달 전부터 준비해 놓고서는 갈 때마다 잊어버리고 그냥 가고, 그쪽으로
지나칠 일도 한 달에 몇 번은 되는데 번번이 잊어버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녀석, 발도 두툼하고 커서
290사이즈에 볼도 넓은 것을 준비해 놓았는데....
목이 메이고 가슴이 많이 아렸습니다. 남인 나도 그러한데 그 녀석 어머니와 할머니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그 아이도 엄마를 용서했겠지요.
 
호스피스 병동에 자원 봉사하러 갈 때마다 지난주에 계시던 그분은 살아 계실까? 하는 두근거림으로 가게됩니
다. 오늘도 지난주에 계시던 몇 분이 보이질 않지만 누구에게 물어 볼 필요도 없는 늘 있는 일. 이곳에서는 어
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래서 속으로만 '아! 그분이 돌아 가셨구나' 라고 혼자 생각을
했습니다. 몇 달 또는 몇 주 동안을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사람들도 (물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만났기에 더 의
미가 있겠지만) 이토록 마음이 짠한데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나 형제
들과, 나의 주변의 사람들과 길지도 않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를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나?
 
사람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생명이 내게 속한 것이 아니기에.....
사람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지금 말하십시오.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지금 말하십시오.
사람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조그만 사랑의 실천도 지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