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영 간호사
메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
 
2002년 6월 호스피스 병동의 권유를 받고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 감추고 근무하기로 결정했다.
육아 휴직을 끝내고 나온 병원 생활은 그렇지 않아도 낯설은 차에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 생각하니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수 선생님의 지도와 병동 식구들의 도움으로 병동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
면서 두려웠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감사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호스피스 제9기 자원봉사 교육을 받으면서 유언장 쓰는 숙제가 있었다.
유언장!!
생각하니 눈물부터 나왔다. 실컷 울었다. 그리고 내 삶을 정리하면서 크게 3가지의 아쉬움이 남았다.
 
1. 용서하는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
2. 아이들을 믿음과 자녀로 양육할 수 없었던 아픔
3. 선행하며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유언장을 마치고 나니 환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날이 밝아 다시 아침이 되었다.
'그래, 난 아직 살아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 아쉬웠던 일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1. 용서하는 마음-> 나에게 상처를 준 자들을 일단 용서하자.
1. 용서를 구하는 마음-> 지금 당장 가서 용서를 받자.
2. 내가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설 때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다. 믿음 생활에 솔선 수범하자.
3. 나의 이 조그마한 손길도 구하는 곳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니 환우들은 이미 나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나의 부모,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 동안 나에게 많은 변화와 많은 일이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계신다.
 
임님. 81세, 유방암.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을 못하셨다.
오른쪽 겨드랑이부터 유방까지 암덩어리가 커져있었다.
처음엔 출혈이 되었고 나중에 피와 고름이 많이 나와 아침저녁으로 치료를 해야만 했다.
무척이나 아프실텐데도 잘 참으시고 매번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아끼지 않으신다.
 
2002. 10. 20
앉아서 치료받게 했으나 상태가 나빠져 앉지를 못 하신다. 안타깝다.
잠깐 동안이지만 의식이 없이 눈이 돌아가셨다. 눕혀 재빠르게 치료를 마치니 "고맙습니다." 하신다. 제게 그러
지 마시고 주님께 감사하세요. 하니 "주님, 감사합니다." 하신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으시다. 모든 것을 주님께
감사로 돌리시는 소박한 마음을 주님께서는 기뻐 받으실 것이다.
 
어느새 두 눈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이신다.
헛구역질을 하시나 드신 것이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다.
진통제를 드리고 나니 이번에는 환부가 너무 아프다고 하신다. 진통제를 주사해 드리니 조금은 안정을 되찾아
가신다.
내일이 할머니 생신이라 하는데.... 괜시리 찡해지는 이 마음.
 
2002. 10. 21
의식이 없으시다. 혈압이 낮다.
간사님과 봉사자님들이 오전 내내 찬양과 기도로 주님을 향해 드린다.
따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가 사랑하시는 사위도 옆에 계신다.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시던 할머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보내어 지신 바로 그 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그토록 소망하시던 천국의 주님의 품으로 안식하셨다.
 
2002. 10. 25
따님이 오셨다. 장례식을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할머니의 장례는 흩어졌던 가족을 하나되게 해 주셨고 가족끼리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게 해 주었다고 그간의
소식을 전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다.
이렇듯 그냥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 이후까지를 챙기시고 돌봐주신다.
 
지금 이 시간.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사랑을 베푸신 것 같이, 나 또한 나의 자리를 알며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
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여러분 망설이지 마십시오.
Do it now !!!
나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