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경 전도사
본회 간사
 
호스피스 8년을 하면서 얻어진 것이 있다면 죽음에 대한 담대함입니다. 이는 좋은 의미이며 어쩌면 죽음에 대
한 무감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애통하는 가족들을 위로하고자 애써 초연하려고 했던 것이 4년전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첫 임종예배였는데 지금은 너무 초연한 마음 때문에 혹시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
니다.
제게 이제 죽음은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저에게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길목
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사 가는 것이라고 비유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 것도 아니예요. 우리가 보따리 싸서 이
사 가는 것처럼, 언제가 하나님의 이사날짜가 정해지면 가야 하는 것이 죽음이지요”
환우분 임종을 지키고 마침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 나눈 대화입니다.
 
그분이 지난 9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처음 집사님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감기’정도로 지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 암이 ‘간으로 전의’ 되었을
때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구했습니다. 항암 치료도중 이틀 동안 봉사자를 요청하였을때도 너무나 밝고 예쁜
모습에 갔다 온 봉사자들은 그분의 병에 깊이를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집사님! 제가 도와주러 왔는데 도울
것이 없네요”라고 하는 봉사자에게 “그냥 옆에 있어주세요 말동무가 필요한 거니까요”라고 격려해 주셨다고 합
니다.
세상을 다 휩쓸고 지나간다고 하는 큰 폭풍이 찾아올지라도 그냥 지나쳐 가는 곳 한두 곳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집사님이 폭풍에서 비켜 앉아 있기를 기도했었습니다.
그리고 항암치료가 거의 끝나간다는 어느 날 “간사님, 요즘 너무 지치네요, 영양제 좀 맞을 수 있을까요” 항상
실로폰을 치듯 경쾌하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은 체 전화를 하셨습니다. 간호사님과 목사님을 모시고 그날 오
후에 집으로 방문했습니다. 거실에서 맞는 얼굴은 그 동안 기억했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만의 특유한 미소는 눈가에도 입가에도 여전했습니다. 당황하는 우리를 먼저 안심시키는 집사님, 어떠한
말을 꺼낼 줄 모르는 우리에게 우리가 할 위로를 먼저 하는 집사님 앞에서 저는 호스피스 화요팀을 화목하게 이
끌었던 팀장님을 보았습니다. 훌륭한 호스피스 봉사자로써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도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자’... 그 동안 제가 너무 쉽게 말해버렸던 호스피스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가슴속부터 파고드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그분을 환자로 만날 생각으로 답답
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에 담대해졌다고 했던가? 내 삶 가운데 죽음을 일부로 여기었다고 했던가? 저는 어느새
죽음을 물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삶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에 빠졌습니다.
2-3차례 간호사님의 방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15일 아침,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이별의 소식이었지만, 차라리 고통의 시간이 짧아졌을 것을 생각하며 감
사했습니다.
 
전집사님! 이상하네요. 집사님이 이 땅에 안계시다고 생각하니 떠난 자리에서 더 기억나는 것 있죠, 사무실 정
리할 때 꼼꼼하게 챙기던 모습, 봉사자들 오면 반기던 모습, 기증물품 팔면서 소리치던 모습... 요즈음 평촌 차
없는 거리에서 옷 파는데 집사님 생각 많이 나네요.
집사님! 많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