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이 권사
안양감리교회, 前 병동간사
 
안양호스피스와 인연을 맺은 지 5년 3개월이 되었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했던가! 처음 교육을 받을 땐 호스피스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교육 1기생이기에 기존 봉
사자가 없었는데 전도사님의 부탁으로 11월에 처음 병실봉사를 나갔다. 제일 처음 만난 환자는 그날 오후에 입
원한 26세 폐암환자, 호주 유학생으로 너무 멋지게 잘생긴 청년이었다. 놀람과 충격, 떨림과 함께 쏟아지는 눈
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 봉사를 갈 때마다 주님께 기도드렸다. 환우님들을 만나면 눈물나지 않게 하소서! 나의 민감한 후각을 둔
하게 하소서! 차가운 이 두 손이 환우님들을 만질 때마다 따뜻해지게 하소서!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셨던 자
비로우신 주님. 그 주님께 그저 감사드린다. 호스피스병동에 오면 하나님의 살아 계셔서 운행하시는 모습을 보
는 듯하여 기쁘고 즐겁고,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이 보리떡을 써 주심에 감사할 뿐이었다.
봉사자로, 간사로 주님의 손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며 신나게 일하다보니 어느새 주님은 간 곳 없고 나
의 의만, 나의 자랑만, 나의 뽐내는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섰을 때 넘어질까 두려워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매
일 입으로 고백하면서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모습...
환우님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도 아파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리라는 첫 고백
은 간데 없고 내 의만을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모습... 그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은 나를 환우님들
의 고통의 일부를 느끼게 하시려고 오빠를 사용하셨다. 오빠는 2002년 10월에 간암 선고를 받고 그렇게 부인하
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12월에 하나님 나라로 돌아갔다.
그 동안 그들에게 빚진 것 갚는다는 심정으로 봉사한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나의 우월감이 있었
나보다. 오빠의 투병생활을 보며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환우님들의 고통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손잡고 기도하던 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억지로 기도하려
고 하면 이번에는 눈물이 방해를 한다. 그들의 기도가 되지 않으니 이번에는 영적 무장이 하나씩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기쁘고 즐겁던 이 일이 견디기 힘들어 지고 육신에 질병까지 겹치기 시작했다.
전도서에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주님께 무릎 꿇기 시작했다. 회개하며 애통하며
기도했을 때 주님은 내게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거하리라.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내가 친히
너와 함께 있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리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리라” 계시록
21장을 들려 주셨다. 그 새벽에 얼마나 큰 감격이 밀려오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그 즈음에 안양호스피스는 힘든 항해를 하고 있었고 간사 일을 내려놓을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데” 하는 그 맘에 주님이 운행하신다는 확신을 또 한번 주셨다.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은 다 주께 맡겨
버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호스피스의 주인 되심을 다시 한번 느끼며 평안해 진 마음으로 간사 일을 놓을
수 있었다.
김승주 목사님, 사모님의 섬세하신 사랑, 같이 근무했던 두 동역자 간사님들, 메트로병원 호스피스병동의 천사
간호사님들, 매주 사랑 듬뿍 싣고 주의 동산에 올라오시던 봉사자님들, 그 동안 우리 병동에서 동고동락했던 환
우님들, 가족들 모두에게 너무 큰사랑의 빚을 졌다. 이 사랑의 빚을 언제나 갚을 수 있을지... 그저 그 빚마저도
내가 할 수 없으니 주님이 갚아 달라고 기도드릴 뿐이다.
욥이 고통을 받으며 “주님, 왜요? 왜 입니까?”하고 묻다가 주님의 폭풍 같은 응답에 “네, 주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했던 고백처럼 그저 우리 주님이 운행하시는 일을 바라만 볼 뿐, 나도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
다.”라고 주님께 고백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