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혜 경 전도사
사무간사
 
서른 살을 이야기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부지런히 끌어 풍선 하나를 얻었
을 때처럼 기쁘고, 풍선 속에 담겨진 이름모를 꿈들을 상상하며 젊음을 드러내는 때이리라.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에도 서른 살은 있다.
김○환님도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청년이었다. 그동안 암 투병으로 지쳐서 인지 외모는 더 들어 보이지만 투덜댈
곳이라고는 엄마밖에 없는 보통 집의 7남매 중 막내 아들이었다.
이가 아파서 2년을 치과에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치아를 치료하여도 낫지 않던 진통의 원인은 골육종
이었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까지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치료였고, 안호선 병동에 입원할 때 그의 모습은
돌출된 암 덩어리로 흉측했고, 악취가 무척 심했다.
 
○월 ○일 (임종 전 56일)
호스피스 병동 구석구석에 방향제와 냄새탈취제가 놓여졌다. 최대한 냄새를 탈취하기 위해서 환기시설도 점검
하였다. 508호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보호자 끼리 잘 어울리던 차였기에, 많은 이해를 구하였다. 하지만 악취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2월의 꽃샘추위 때문에 문들이 닫혀졌기 때문이다.
 
○월 ○일 (임종 전 42일)
사람들의 마음도 닫혀버렸다. 화해롭기만 하던 보호자들도 양분되는 분위기다. 계속 환우를 이해하자는 보호파
(?)와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다른 병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분리파(?).
냄새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의 나름대로 방법을 찾던 가족들의 불만이 조금씩 터져 나
오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2인실로 옮기자는 얘기를 하였다. "2인실에서 보는 안양시 야경은 어떤 화가도 표
현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워요" 하지만 ○환씨는 2인실이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일단 스
텝들은 당장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고, ○환씨는 어린아이처럼 안심하며 기뻐한다.
 
○월 ○일 (임종 전 39일)
형님내외가 와서 2인실로 옮기자고 환우를 달래기 시작한다."병원비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동안 ○환씨 때문
에 가족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매우 컸던 것 같다.
(나중에 2인실에 잘 정착하여 "지금 왜 이리 이 방을 좋아 하면서 옮기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또 혼자 격리되는 줄 알았지, 아무도 없이 병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아? 봉사자가 이
렇게 자주 오는 걸 미리 알려주었어도..." 그는 ○○병원에서의 힘들었던 독실생활을 간단히 전해주었다.)
 
○월 ○일 (임종 전 23일)
"예수님을 믿고 싶은데 그게 잘 믿어지지 않아" 주기도문을 물끄러미 보면서 자신이 답답함을 이야기한다."예
수님을 믿는 것은 선물 같아요, 주님이 선물 주시기를 조그만 더 기도해요"
 
○월 ○일 (임종 전 17일)
환부가 급속히 확장한다. 저녁 후 약을 먹고 속이 울렁거려 토하였다. 김전도사님이 다시 복음을 전하였다. ○
환씨가 영접기도를 한다. 김전도사님이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손잡은 손으로 ○환씨의 냄새가 배어
나오지만 이곳에선 그 어느 것도 벽이 될 수는 없다. ○환씨 방에 성령님이 내려오셨다.
 
○월 ○일 (임종 전 12일)
오늘은 세례를 받는 날이다. 어제까지 세례 받는 다는 소식으로 어린아이처럼 설레면서 목욕도 하고, 속옷까지
깨끗하게 갈아입었는데 오늘은 도무지 일어날 기척이 없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몸을 흔들어 봤지만 아무래도 세례 받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
예배 시간이 되었지만 도저히 못 일어나는 ○환씨를 위해 세례 대신 찬양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보아라 즐거
운 우리 집♪"(찬 222장)
찬양이 다 끝날 때쯤 갑자기 ○환씨가 몸을 뒤척이며 오뚝이가 서듯 벌떡 일어난다. 기적같이 갖게 된 세례식
때문인지 환우분들이나 봉사자 모두 흥분되어 찬송가가 제 음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하늘의 문이 열리는 찬양
이었으리라.
 
○월 ○일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던 날)
어제 저녁 밤새 세례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어머니가 펴준 시편 23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한참을 응
시하더란다. 새벽 6시에는 혼자 화장실에 다녀왔고 좀 쉬는 듯 하였는데, 아침 7시 20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
았다.
얼굴 한 면을 가렸던 암 덩어리는 이제 작은 혹처럼 작아져 버렸고,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막 목욕
을 마치고, 로션을 바른 사람처럼...
이 땅에도 천국은 있다. 오늘 호스피스 병동에도 그것이 경험되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
다. 서른 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