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혜 경 전도사
본회 간사
 
얼마 전 국립암센터는 “품위 있는 죽음” 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다. 우리는 ‘품위 있는 삶’에는 익
숙하여져 있지만 ‘품위 있는 죽음’은 낯이 설다. 과연 죽음에 품위가 있을까? 그리고 이 평가의 주체는 누구일까
? 이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는 “나도 이렇게 죽었으면...” 하는 죽
음의 모델들이 있다. 바로 이 분처럼....
 
박○재님 (60세, 남, 후두암)
2004년 4월 26일 월요일
이미 응급실에 도착하면서부터 위급한 상태이다. 당수치가 낮고, 호흡이 매우 힘들다. 과장님은 응급처치를 하
시면서 임종 준비까지를 말씀하신다. 가족들은 당황하여 울며 병실 안팎으로 서성인다. 이렇게 임종직전의 환
우가 올 때면 가족들은 짧은 순간 후회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슬픔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당황한 마음 때문
인지 쉽게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는다.
화목해 보이는 이 가정도 빨리 이곳에 모시지 못한 자책을 하면서도 다른 가족 탓을 한다. 준비되지 못한 임종
은 이렇게 본인과 가족은 물론 호스피스들에게 조차 당황스럽다.
 
2004년 5월 1일 토요일
입원할 때를 생각하면 오늘의 모습은 기적이다. 두 분 내외가 딸과 같이 나란히 예배를 드린다. 그만큼 빠르게
안정을 찾으신 것이다. 환우분이 부인에게 찬송을 찾아주시면서...
이곳에 오셔서 당신의 병이 낫는 줄 아시고 곧 퇴원할 계획을 말씀하신다. 진통제를 주사액 대신에 약으로 조절
한다.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병세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고향(전남 신안)에 다녀오
게 하려는 과장님의 배려다.
 
2004년 5월 12일 수요일
“아프더니 정신도 어떻게 됐나봐, 딸 안 오면 안 온다고 울고, 손주 오면 반갑다고 울고...” 부인이 요즈음 남편
이 울보가 되었다고 한다. 많이 울면 욕심도 눈물에 버려지는 것일까, 많이 울면 하늘의 소망이 더 커지는 것일
까, 많이 우는 환우일수록 많이 웃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빨리 하늘나라에 가시는 것도...
 
2004년 5월 14일 금요일(임종 13일전)
부인은 시골 모내기가 걱정되어 시골에 내려가셨다. 부인이 없지만 꾸준히 운동하시고, 예배시간을 사모하시는
모습이다. “예배시간이 기다려져요” 늘 30분전부터 예배를 준비하고, 정좌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건강한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후두암 때문에 소리 내어 찬양하지는 못했지만 그분은 눈으로 가
슴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다.
 
2004년 5월 24일 월요일(임종3일전)
회진 시 과장님이 어디 아픈 곳이 없는가 물으신다. “네, 아픈 데가 전혀 없어요” 일주일간 시골에 다녀오시기
로 하고 외출하셨다.
 
2004년 5월 27일 목요일 (임종 당일)
어제 외출에서 돌아오면서 차안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기를 세 차례나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해
서 약간의 처치가 끝나니 괜찮다. 수요 저녁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렸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새벽 4시쯤 혼자서
화장실까지 다녀오셨다. 그리고 6시가 좀 지나서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시더니 오전 10시 55분 모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무시듯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의 의미를 알고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 품위 있는 삶의 연장이
며, 품위 있는 죽음은 아닐까? 이 땅에도 천국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