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쉼터 이야기

호스피스 쉼터의 필요를 절감하고 천사운동을 시작하였다. 동역자들의 협조로 빠른 속도감을 보였고 얼마 가지 않아서 비봉에 소재한 낙후 가옥이 달린 부지 약 1000평을 매입하게 되었다. 그곳은 농촌이었기에 토지 거래 허가를 득해야 했다. 실수요자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당분간 숙식을 라면으로 해결하면서 행정기관 실사에 대비해야 했다. 사용하지 않던 사랑방을 숙소로 사용하려다 보니 온통 서(鼠)선생의 분비물 투성이었다.

그렇게 몇일을 지내게 되었는데 밤이면 천정 극성이 장난이 아니였다. 한번은 한 밤중에 묵직하고 둔탁한 무엇이 가슴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주 큰 쥐였다. 장롱 뒤로 숨어 다니는 놈과 숨바꼭질을 하노라 밤을 새다시피 하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모든 허가를 득하고 나니 부지 경계가 궁금하였다.

일단 측량사를 통하여 경계를 확인하였는데 현황과는 거리가 있었다(재측량 결과 1차 측량에 오류가 있었음을 측량기사가 시인 함). 그 과정에서 1차 측량이 현 경계선과 다르게 결과가 나오자 땅 욕심을 내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였다. 난감하고 기가 막혔다. 시작도 전에 도둑으로 몰려가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재측량에서 ‘오해’라는 것이 판명이 났고, ‘경솔했던 행동’이 미안했기 때문인지 잘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나는 없던 일로 한지 오래다. 이제는 첫 열매라면서 호박과 버섯. 은행. 햇밤을 수확하면 가져 오신다. 병원으로 나르는 호박자루도 그분이 주시는 것이다. 따님 결혼식에 초청받기도 하였고 나는 가물 때는 우리 지하수를 대어 드리기도 하고 명절이 되면 조그마한 마음의 선물도 드린다.

포기! 하면 옆집을 빼 놓을 수 없다.

본격적인 건축을 위하여 정식 측량을 해 보니 우리 땅의 상당 부분을 이웃집이 진입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터는 지금의 건물이 들어서는데에 꼭 필요했던 면적이었다.

매도자로부터 그 땅이 원래 우리 땅이었다고 들은 바도 있었기에 건축 시엔 자연스럽게 물려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흔히 경험 하는 일이라고는 한다지만 그 터를 찾아 오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그로 인하여 다툼도 잦았다. 그 와중에서 ”성도 피 빨아 먹는 목사!“라는 심한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이런 힘든 과정에서 행정당국의 도움을 주선해 주신 류승란 권사님과 현장 감독으로 자원봉사를 해주신 김종철 권사님께서 수고를 많이 하셨다.

그런데 그 후. 어느 날. 밭일을 하고 있을 때 였다. 지나가던 부부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목사님 죄송해요. 너무 괴로워서 3번씩이나 울었어요. 신부님께 고해를 드렸더니 ‘빨리 가서 용서를 구하라’고 하셨어요”하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천주교라던 그는 흥분하여 쏟아 붓던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신부를 찾아 고해를 했던 모양이다.

180도 변한 그들 태도에 당황한 것은 우리였다. 하지만 나는 “입장을 바꾸어 보면 이해할 수 가 있을 것 같아요. 잊읍시다. 이 시골에서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자식들 보다 먼저 연락해야 할 우리가 아닙니까. 비 온 다음에 땅이 더 굳는다고 했으니 이젠 잘 지내 봅시다”는 말로 오히려 위로를 해 드렸다. 그 후 부인은 집사람에게 “나와 언니 동생을 하자”고 청해 오기도 하였다. 지금은 서로 집 앞 눈도 지워주고, 김장 소금물을 나누어 쓸 정도로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한밤중에 가슴으로 떨어지는 쥐가 징그럽다고 도망가거나, 생전 듣지 못하던 ‘땅 도둑이니, 성도 피 빨아 먹는 목사니.. ’하는 소리를 듣고 흥분하여 “끝장을 내야겠다”고 했다면 지금쯤 어떤 결과를 가져 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자존심 정도가 아니라 모욕적 말을 들으면서도 참아야 했던 진짜 이유는 분명한 목표 때문이다.

호스피스는 죽음 대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쉼이 필요하고, 쉼에는 시간과 걸맞는 환경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로뎀나무를 이런 면에서 귀히 쓰시려고 준비시켜 놓으셨다. 늘 그러셨듯이 향후 여건에 따라 점차 제도권 안으로까지 이끄실 것을 굳게 믿고 있다.

이것을 내다보는 입장에서는 자존심. 모욕감 정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였다. 마치 예수님께서도 큰일을 앞두고 걸어오는 마귀의 딴지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듯이.. 처음부터 목표가 분명했던 나는 그보다 더 한 일이라도 참아 넘겨야만 했다.

나는 마을 애경사도 열심히 챙긴다. 농촌 정착 14년이 된 지금은 마을 유지(?)가 되어 가고 있으며 우리끼리는 ‘다음 이장 선거에 나가도 되겠다“며 웃기도 한다.

세상은 성질없이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99번 잘 지내다가도 단 한번 성질 부림으로도 모든 것이 훅! 날라갈 수도 있다. 명심할 일이다. 선교회 20년을 지내는 동안 힘들어 할 때가 없었겠는가. 그때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이것도 참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자문해 가며 고비를 넘기 곤 했다.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 주시던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살다보면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이때는 정말 중요한 것 하나만 잡고 다른 것들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감정. 자존심에 연연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 심지어는 본질을 놓치기도 한다.

가끔 긍휼 사역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경험담을 들려준다.

‘무슨 일이든지 일이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나는 한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데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안호선 불변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