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죽음도 삶의 일부분으로 이해토록....”라는 말을 한다.

‘탄생이 있으니 죽음도 당연하다’는 식이다.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책상 위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평안치 못하면 순리적으로 받아 드리기 어렵다. 죽음을 과정으로 인식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면 평안할 수 없다. 절박한 현장에서 평안과 편안을 혼동하는 경우를 본다. 호스피스 현장에서의 정서적 고통과 영적 고통의 영역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정서적 돌봄의 목표는 편안(便安)

편안은 육체적이기도 하고 심리적 안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는 ‘안정 본능의 일시적 충족’에서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는 보완요법 등이 동원되기도 한다. 가령 상담이나 즐기던 가요. 올드 팝송. 웃음치료. 향기요법. 마사지.. 같은 것도 일시적 심리 안정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심리적 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다. 로뎀나무에는 색소폰 합주단이 방문하여 구성진 옛 가요를 연주해 준다. 환우 분들은 연주를 들으면서 눈물을 짓기도 한다. 회상은 심리 안정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정도를 평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적 돌봄의 목표는 평안(平安)

평안은 ‘영원한 생존 본능의 충족’에서 온다.

영적 존재는 심연(深淵)에 ‘절대자’와 ‘영원으로의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위기를 맞으면 표출된다. 멀리하던 절대자를 찾게 되고, 절대 한계를 절감하면 내세에 대한 기대심을 드러내게 된다.

보완(대체)요법 등이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예비적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심연의 본능에까지 이를 수는 없다. 즐기던 팝송이나 가요를 아무리 오래 들었다고 해도 평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평안은 ‘영원으로의 그리움’이 충족될 때 가능해 진다. 과정에서 과거의 깔끔한 마무리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주님은 “다 이루었다”(요19:30)하심으로 마무리가 잘 되었음을 선언하셨고,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심을 확신하셨기에 (마26:24. 요13:1 ) 십자가를 과정으로 인식하셨고 담대할 수 있으셨다.

미래의 확신을 가로 막는 것이 있다. 죄(罪)다. 죄에는 죄책감이 따른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양심으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죄책감이 해소되지 못하면 평안할 수 없다. 사람들은 옛부터 이를 해결하려고 많은 자구 노력을 해왔다. 도(道)를 닦기도 하고, 공로(功勞)를 쌓아 보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학(自虐)을 시도하기도 한다. 자위(自慰)까지는 몰라도 본질적 해결 방법은 될 수가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하셨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하셨다. 이제 대책없이 다 망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아버지께서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셨다. 탕자를 불러 아예 자녀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되는 방법은 피나는 자구 노력이 아니라, 그분 자녀가 되는 것이다. 자녀를 정죄하는 부모는 없다(롬 8:1). 자녀가 되면 죄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없다’가 아니라 ‘없다고 인정해 주겠다’(=칭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정성이 아니라 소속이 문제다. 자녀가 되면 더 이상 죄책감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요 8:32). 자녀가 되는 비결은 간단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겠다”(요 1:12)신 약속을 인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그 즉시 이루어진다(요5:24). 그래서 복음 아닌가.

호스피스 현장에서의 복음 제시를 놓고 “가장 인도주의적이어야 할 터미널 과정인데 너무 폐쇄적이지 않은가?”생각할 수도 있다.

절체절명에서의 복음! 이야말로 가장 인도주의적이 아닐까. 주님이 굳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던 이유를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다. 시간이 없기에 더욱 폐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에서 요구되는 절대 가치는 평안이다. 믿고 따르던 선생님이 갑자기 ‘떠나신다’는 말씀에 위기의식에 휩싸인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셨다(요14:27)

종교의 핵심과제는 현세적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아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중압감을 어떻게 희망적으로 해결할 것인가?’(히2:12)에 있다.

종교의 선택기준도 당연히 여기에 두어야 한다. 샤마니즘을 종교라고 하지 않는다. 희망적이고도 합리적 내세관이 없기 때문이다.

내세에 대한 기대는 영적 존재인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자구 노력에도 허공을 치듯 만족도가 낮으니 자학도 서슴치 않는다.

죽음 앞에서의 평안은 ‘영원한 생존본능의 충족’에서만 가능하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로 놀라워..”를 부르며 감사의 눈물을 짓기도 하고,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를 부르며 느끼는 포근함을 또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요14:1)하신 ‘그 너머의 보장’을 확신하며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눈 감았다 뜨면 곧 천상’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눅 16: . 고후 5: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