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받은 자들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돌뿌리 풀뿌리 하나에도 메시지가 있다는데(마10:29~30) 나에게도 가슴에 인장처럼 새겨 진 메시지가 있다.

첫째) 결국은 다 죽는구나

우리는 지금 영양이 좋고 환경이 좋고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니 그 이상도 바라보게 되었다. 이젠 100세 연세 드신 분들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 죽게 된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현장이 호스피스다. 히 9:27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하셨다. 어느 누가 ‘아니요“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언젠가는 故김승주 성도로 불리 울 때가 있을 것이다, 호스피스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둘째) 죽음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빠를 수 있겠구나

환우 분 대부분에게서 듣는 말은 “평생 병원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 동역자들 가운데서도 함께 열심히 일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만 손을 놓아야 했던 분들이 있었다.

우리 교회와 한 건물 미술학원의 젊은 학원 원장님을 병동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다. 늦게 결혼해서 얻은 딸을 얼마나 예뻐하였는데...

약 4:13에는 “허튼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안개라”고 하셨다. 시 90:에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고도 하셨다

호스피스 현장은 ‘장담하며 살아서는 아니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한다.

어느 의사분이 수술대에 누우면서 “내가 수술대에 누울지 누가 알았겠는가?”하는 말을 했단다. 호스피스는 ‘죽음은 어느 날 불쑥 다가 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셋째) 연(軟)착륙 해야겠구나

호스피스는 우주적 종말 뿐 아니라 개인적 종말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어느 날 불쑥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위해서는

1) 지금 일에 최선을 다해야..

구원 얻은 자의 삶은 사명자의 삶이다.

따라서 죽음은 사명을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는 받지 않아야 겠다.

그래도 그만할 때, 건강이 이만할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특히 잠 3: 27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은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를 좌우명으로 삼아...

2) 가능한 한 갈등을 피해야...

인생은 ‘산전수전’이라고 한다. 요즘은 공중 전까지 합세하여 세상살이가 곧 싸움터같이 고단하다. 속도전 같이 살아가는 동안에 본의와 다르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특히 연합사업을 하다보면 부득이하게 갈등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도 개인적 감정을 가질 일은 아니다. 크게 보면 서로가 잘 해보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어떤 면에서든지 여전히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갈등에는 대부분이 큰일보다는 소소한 이해관계나 섭섭함에서 시작된 일들이 많다. 때론 나에게도 살짝 미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떠난다고 생각하면 무엇인들 주저하겠는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모두 화해를 하고 싶다. 웬만한 자존심 일랑은 땅에 뭍고...

3) 사랑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

요 13:1에는 “주님도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오는 줄 아시고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셨다. 나에게도 가족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사랑하는 일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동안 너무 일에만 몰두한 점이 없지 않다. 특히 고생 많이 하고 이제는 병약해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아픈 후에는 명예 원장으로 추대하고 나는 시다바리(?)를 자처하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

4) 숙제는 확실히 해 두어야..

기독교는 구도의 종교가 아니다. 계시를 인격적으로 만나면 순식간에 구원의 역사가 이뤄지고, 그 유효성은 영원하다. 그 영원성은 구원이 현재적, 존재론적, 관계적 변화이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복음이다. 구원이 시한부적이고 공로와 시간이 걸려야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복음이라 말할 수 없다.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까

(순간성) 요 5:24~25에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남이라”하셨고

(존재론적) 고후 5:17에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노라“ 하셨고

(관계적) 롬 5:10에는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 즉 화목하게 된 자로써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하셨고

(영원성) 요 10:28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1: 25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시며 못 박아 확인하셨다.

결국 구원은 현재적이고, 존재론적이고, 관계적이고, 동시에 영원하다.

그러하기에 현재 경험하는 구원은 미래도 확신할 수 있다.

이따금씩 노년의 성도님들에게 “지금 부르셔도 천국가시는 것을 믿을 수 있지요?”하고 물으면 “그 때 가보아야지..” 혹은 “ 뭐 해 놓은 것이 있어야지..”하는 분들을 본다.

지금 확신하지 못하는 자의 구원은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무엇인가 공로로 구원은 얻는다면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주님이 피흘려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을 ‘믿음(인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마귀에게 휘둘리던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흔들리는 이들에게 십자가 상에서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와 조심스럽지만 나의 간증을 들어가며 아주 많이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내 자신의 구원을 점검해 보기도 한다. 혹 “저가 남은 구하였으되 자기는 구하지 못했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세례를 베풀 때 더러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눈물을 진정시킨 적이 없다.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도의 눈물이다. 가본 적도 없는, 어느 누구와도 같이 갈 수도 없는, 가다가 되돌아 설 수도 없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칠흙 같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어느 누가 이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세례를 받는다는 소식’에 펄쩍 뛰며 만류하던 딸에게 “딸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게 놔두렴”하시던 교사 출신 환우님을 보았다. 그렇다. 내 운명은 오직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절체절명 앞에서의 복음은 생명 자체이다.

나는 1980년 가을. 천하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을 얻었다.

주님은 더러운 죄의 늪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를 찾아 오셨다.

많은 눈물의 터널을 통과하게 하신 후,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겸험해 보지 못한 평화를 선물하셨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도 더 하단다”(롬 5:20)는 말씀으로 위로하셨다.

그동안 짓누르던 추한 것들로부터 나는 자유를 얻었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이 여겨지던 것들이 시시하게 여겨지기 시작하였다. 이따금씩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교회는 따라 다니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나를 향하여 “세상 사람 다 믿어도 당신은 믿지 않을 꺼예요”하며 아내마저 포기하던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다니!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어렵다.

그 후 인생살이가 힘들고 고통스러움은 여전하지만, 단언컨대 근본적인 평안(요14:27)과 자유(요 8:32)는 한 순간도 빼앗겨 본 적이 없다. 힘들 때는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 가리라.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함께 살리라”(436장)를 부르며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다.

거듭난 이후에도 여전한 죄성으로 인하여 차마 열거조차 어려운 실수와 부끄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틈틈이 기억을 살려가며 회개하고 있다. 교계에서 존경받는 Y교회 C목사님은 은퇴 후.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하신 일 중에서 ‘가장 큰일은 회개’였다고 들린다. 고매하신 인격에 새삼 옷깃을 여밀게 된다.

나에게도 여생의 소박한 꿈이 있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어떻게 하면 맑은 영혼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싶다. 때가 이르매 구원해 주셨고, 꿈을 주셨고(빌2:13), 구체적으로 걸음을 인도하셔서 오늘에 까지 이르게 하셨던(잠16:9) 주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며(마28:20),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히4:16)로 여생의 꿈도 이루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다(시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