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새번역, 히브리서 9:27)이라고 선언합니다. 임종의 순간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짐짓 모른 채 외면하다 맞닥뜨릴 수도 있지만, 미리 생각하고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순간을 맞이할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지난 20년 동안 병원에서 일을 하며 환자와 보호자가 자신과 가족의 병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병을 앓고 있으며,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또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가 적습니다. 특히 나이가 있는 환자의 경우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모를 뿐더러,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치료를 받을 지 결정할 때조차 배제될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나이 드신 부모님이 충격을 받아 건강이 더 나빠질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와 사회 분위기 속에 죽음을 예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시민 의식과 사회 환경에도 변화가 오고 죽음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 왔습니다. 특히 의학의 발달로 생명이 연장되고 건강이 향상되었지만, 여러 기계에 의지하여 무의미한 생의 연장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 두 건의 중요한 사건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발생하였는데, 보라매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이 그것입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1997년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가 다친 환자와 관련된 일입니다. 응급 수술로 환자는 생명을 건졌으나 수술 후 발생한 뇌부종으로 자발호흡이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이에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여 환자의 생명을 살립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 등을 근거로 보호자(배우자)는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였고, 의료진은 반대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지속적인 배우자의 요구에 의료진은 각서를 받은 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는데, 이후 환자가 사망하고 다른 가족들에 의해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간 이 사건은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환자의 퇴원’에 대해 의사를 살인죄로 처벌하였습니다. 이 판결 이후 의학계에는 ‘생환 가능성이 없는 환자라도 퇴원을 시키면 살인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의사가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환자도 자발적으로 호흡이 멈추기까지 의학적 치료를 중지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이는 환자의 평화로운 임종을 기대하는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정서적, 경제적 고통을 초래하였고, 제한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의료계에도 큰 부담과 불신을 안겨주었습니다.

김할머니 사건은 2008년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일어났습니다. 김할머니는 폐암이 의심되는 종괴의 조직검사를 시행하다 과다 출혈로 뇌손상을 입었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해왔던 김할머니의 가족들은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선 보라매병원 사건의 판결을 기억하는 병원측은 당연히 이를 거부하였고, 김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결정은 법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2009년 대법원은 김할머니의 연명의료 중단 요청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립니다. 판결문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이 보편가치와 시대의식에 기초한다면, 앞선 두 사건은 연명의료와 관련된 한국사회 인식의 변화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료를 해도 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전제 조건으로 환자 본인의 추정 의사 및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배경 속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지난 3월부터 시행되게 이르렀습니다.

이 법은 중요한 두 가지 서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명의료계획서’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건강할 때 혹은 죽음을 예측하기 이전에 앞으로 임종이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여 무의미한 생명연장 시술이나 호스피스 이용 등에 대하여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입니다. 이 서류는 본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설명을 들은 뒤 작성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이와는 달리 임종과정에 있거나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아주 분명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임종과정이라 함은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말하고, 말기환자란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입니다. 그러나 모든 말기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법에서는 암, 에이즈,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그리고 만성 간경화 등 네 가지 질병을 대상으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물론 이들 환자는 최소 의사 2인으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들 서류를 작성한 사람들에게는 임종과정에 있을 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연명의료가 무엇일까요? 수액과 주사제, 산소투여를 비롯한 일체의 치료를 중지하는 것을 말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에서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를 연명의료로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나 암, 에이즈,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그리고 만성 간경화 환자들의 말기 상태에서 치료 효과는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연명의료 결정이 내려져도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치료 등은 중지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명의료결정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지시키는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결정에는 반드시 전문가인 의사 2인 이상의 판단 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환자 스스로의 결정에만 의지해 생을 중단시키는 존엄사와도 구별이 됩니다.

이 서류들은 한번 작성이 되었다고 영원불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작성하지 않거나 혹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판정된다면 이 서류들은 효력이 상실됩니다. 또한 당사자의 심경 변화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등록기관에서 상담 후 미리 작성한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경우 이는 변경된 내용으로 국립연명의료기관에 통보되어 관리될 것입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이 법이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이 있고, 또한 의료 현장에서 이를 적응할 때 제정 당시 생각하지 못하였던 어려움들이 드러나는 등 혼란과 어려움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는 물론, 불치병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조차 꺼려했던 한국 문화를 고려한다면 이는 큰 발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약 25만~30만 명의 사람들이 죽습니다. 이중 약 20만 명은 병원에서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 중 대다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생명연장을 위한 여러 치료를 받으며 생의 남은 시간들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상기한 내용들은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이 땅에서의 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