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목사 1998년 6월.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메트로병원과의 협력관계를 맺고 첫발을 내딛게된 우리 안호선은 그동안 하나님 의 뜻에 따라 병동호스피스로 섬겨오던 중 작년 11월부터는 새로이 가정호스피스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등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꾸준히 쓰임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지금은 가정에 방치되어 있는 환자들에게도 잘 준비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죽음의 충분한 준비 시간 을 갖게 하는 쉼터건립운동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 동안 같이 울고 웃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마치 주마등과 같이 눈앞을 스쳐가고 있 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유독 서○○(81세, 폐암)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님은 종교계에서 혹은 정치계에서 누구라 하면 세상이 다 아는 소위 성공하였다는 이들을 가까운 친구로 두고 있었습니다. 본인도 그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던 그도 역시 회생불능의 질병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말해서 인간적인 연민(憐憫)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님은 예배시간마다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왜 진작 이곳을 몰랐던가?" 하시며 꺼어억 꺼어억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자주 하셨습니다. 이곳이 천국 같다면 밖은 외로움, 두려움 혹은 죄책감 등으로 인 해 지옥 같이 지냈다는 이야기겠지요. 아무리 넓은 평수의 아파트나 각종의 문화시설도 임종환자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님은 훌륭한 자녀들을 두셨습니다. 그만큼 본인의 자식자랑도 대단하셨으니까요. 그러나 그토록 훌륭한 자녀들 도 정작 죽어 가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님의 자랑스런 아들도 아버지가 죽음과 싸우는 고통스러운 시간에는 외국에 나가 있어야만 했으며 임종도 지켜드리질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네 보통 가정의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우리 주변에는 겉모양은 그럴듯해 보여도 내부적으로 모래알 같은 가정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의 껄끄러운 관계는 불치의 병 판명이 나면서부터는 아예 남을 대하듯 사무적 관계로 돌아가 고 때로는 원색적인 표현도 거침없이 내 뱉는 것을 수(數)도 없이 목도(目睹)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밖에도 이혼 등으로 깨어진 가정은 또 얼마나 많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사실상 가정에서 떨어져나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에게 과연 편안히 죽을만한 자리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는 종합병원마다 산부인과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출산 전문병원도 많고 요즈음에는 산후조리원도 많이 생겼습니다. 하나같이 한 인간의 세상 등장을 축하하며 돕는 프로그램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나름 대로 귀한 생애를 살아가던 한 인간의 명예로운 퇴장을 돕는 프로그램 설정에는 매우 인색해 하고 있습니다. 한번 출생한 우리 모두는 언제인가는 반드시 죽게끔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애써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서인지... 아니면 자신은 죽음과는 멀다고들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도 인색한 것이 현실입니 다.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죽어 가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 열심히 살다가 때가 되어 인생을 마칠 무렵이 되었을 때 가정과 같이 안정된 분위기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써 의 처우를 받으며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람직한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에 동의(同意)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호스피스 법제화와 관련하여 몇 개 단체를 시범단체로 선정, 여기에서 산출된 자료를 토대로 2005 년도에는 전면적인 호스피스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전면실시는 매우 기뻐할 일입니다. 그 동안 이름도 없이 음지(飮地)에서 땀 흘리고 고생해 온 수많은 호스피스 종사자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일이 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쾌재(快哉)를 불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을 듯 싶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고통하는 환자를 한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수입 원의 대상으로만 치우쳐서 보게 될 가능성 때문입니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제도화 이전에 비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나마 그래도 따스한 인간적인 배려나 처우를 받으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경제논리가 앞선 상황 에서는 전보다는 훨씬 못한 분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호스피스 법제화의 목적 중 하나는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중단하여 의료재정의 안정을 기하겠다는 거시 적인 목표가 있고 이에 대한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기존의 의료보험상 숫가보다는 높은 숫가체제를 전제로 한 호스피스법을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단 법이 시행되면 상당히 많은 의료기관들이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참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절대절명(絶對絶命)의 상황에 처한 한 인 간이 한낱 경제논리의 대상으로만 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도 바라는 '편안하고도 평안히 죽어 가는 과정'이 연출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대 명제 앞에서 요구 되는 윤리의 수준은 가히 최고의 수준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순수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감히 외람되기는 합니다만 저희가 지난 5년간 메트로병원 안에서 연합사업으로 시행해 온 병동호스피스활동은 바람직한 병원호스피스를 추구하는 모든 호스피스 지망생들에게 하나의 모범적 사례 로 소개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본회가 현재 천사운동을 통해서 펼치고 있는 '주간보호쎈터(쉼터)건립운동'은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림과 동시에 우리와 똑같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의료제도권 밖의 사람들(예: 의료보험 미가입자, 노숙자, 중국동포, 외국인 근로자 등)에게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기여(寄與)를 하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