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주 희 교수
한국호스피스협회 직전회장
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
 
금년 6월부터 보건복지부 암관리과 주관으로 호스피스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죽음
앞에서도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다가 떠날 권리를 찾기 위한 호스피스 제도를 만들기 위
함이다.
1998년부터 한국호스피스협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한 시민운동이 빠르게 결실을 맺어가고
있어서 호스피스 실무를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모른다. 빠른 시일 안에 바람직한 시
범사업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난 11월 13일에는 호스피스 시범사업 중간평가 워크샵이 있었다. 그런데 이 때 나온 질문들이나 결과들을 보
면서 우선 호스피스 시범사업지원평가단에 속한 분들에 대한 호스피스 교육이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질문들 중에는 호스피스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과 거리가 먼 내용이 나와 호스피스 실무자들을 무척 당황하게 했
다. 예를 들면 '가정호스피스와 가정간호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샘물호스피스에서는 의료적 조치가 가능한지?
의료적 문제 발생시 어려웠던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등등' 이다.
'호스피스 대상자는 응급환자가 아니다'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런 질문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
치료중심의 의료구조에서는 말기 암환자가 응급환자로 취급되어 임종 마지막 순간에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거
나, 기계적으로 어떤 의료적 조치(그것이 환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진이나 환자, 가족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이라 그렇
게 하지 못할 경우 쓸데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의료사회적 분위기이다.
그러나 케어 중심의 호스피스 구조에서는 말기 암환자를 응급환자로 보지 않는다. 가정이나 시설, 병원에서 자
연스러운 임종과정을 맞이하도록 도우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잘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임종 순간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며 심한 고통만 안겨주는 무의미한 치료 차원의 의료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지 않는다. 물론 고통을 줄이기 위한 통증관리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호스피스 차원의 의료행위는 당연히
이루어진다. 그래서 다른 치료적 개념의 의료적 접근이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런 기본적인 케어들이 보장되지 않는 호스피스 프로그램은 더 이상 호스피스가 아니다. 샘물호스피스는 지난
10년간 많은 말기 암환자들을 섬기면서 이런 부분들이 이미 검증되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기 원하
고 있으며 이곳에서 봉사하기를 원하고 있다. 샘물호스피스가 시설형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된 것도 그런 기본
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범사업 중간 평가 워크샵에서 그런 기초적인 질문들이 나왔다는
것은 호스피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호스피스 시범사업지원평가단에 속하여 활동을 하고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관계 공무원들이라면 최소한의 호스
피스 지식과 개념 정리는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호스피스 현장을 방문하여 섬기는 실제적 체험도 해보
고 그것이 안되면 이런 기초적인 내용들이 정리된 이들로 호스피스 시범사업평가단에서 활동하게 해야 한다. 그
런데 그렇지 못한 현 상황을 접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판단되어 한국호스피스협회에
서는 보건복지부 암관리과에 이를 보완하고 시정해 줄 것을 2003.11.24 문서로 정식 건의하였다.
'호스피스 시범사업평가단' 구성원들이 호스피스 개념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야기되는 문제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째, 효율적인 호스피스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가적 시범사업에 범국민적인
의견을 종합하고 말기 암환자와 호스피스 활동에 대한 현실적인 상황들을 정확하게 평가하기가 어렵다.
둘째, 이론에 치우친 탁상공론적인 시범사업 진행으로 인해 시간, 물질, 인력, 에너지들을 낭비하고 일선 시범사
업기관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호스피스 제도 정착은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만큼 늦어질 것이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호스피스 실무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미 시범사업 시작단계부터 호스피스 실무자들이 여러 문제점들을 많이 지적했다. 예를 들면, 대조군 조사의
어려움, '호스피스 · 완화의료'라는 용어 사용의 거부감, 말기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항의 설문 내용들, 말기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하며 시범사업에도 전혀 도
움이 안 되는 조사 절차, 현 의료현실을 무시한 조사 방법(수많은 문항을 사용한 설문지 방법)등이다.
말기 암환자는 호스피스 제도가 만들어지는 때를 기다려주지 않고 떠난다. 시간이 급하다. 가능한 빨리 호스피
스 시범사업이 끝나 그들이 호스피스 도움을 충분히 받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떠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이는 머지않아 우리 가족이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위의 글은 월간 ‘호스피스’ 2003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