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격언엔 ‘장례식장에서는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철학자라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사실 깊이 사유(思惟)할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그저 하 루하루 주어진 과제 해결하기에도 얼마나 벅차던가. 아침이면 그만해서 집을 나서지만 저녁이면 거의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고.... 이것의 반복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사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모든 것을 일시에 멈추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물리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 죽음 앞이다. 우리가 찾게 되는 ‘떠난 이들’은 대부분이 과거에 나와 관련을 맺고 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는 어디에서 와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그렇게도 열심히 살아왔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동시에 한번쯤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13년 전. 내가 첫 번째 만난 분은 후두암으로 목에 호-스를 꽂고 심한 악취를 풍기며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던 분 이었다. 아들을 신학생으로 두었다는 그분은 언어 대신에 필담(筆談)으로라야 겨우 기본적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 그분은 나와 동갑(同甲)이었다. 나는 첫 번째 봉사에서부터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메시지를 들었고 많은 생 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줄 곳 ‘내 인생은 덤 인생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덤으로 사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 ‘금쪽같이 아껴 쓴다.’라는 말이 있다. 귀하면 귀할수록 그렇지 않겠는가? 금쪽같은 것들을 아끼는 현실적인 방 법은 겸손한 ‘섬김과 나눔’이다. 나는 가끔. 천진스런 아기들을 보다가 (우스개 같이) “저 애처럼 다시 시작 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해 볼 때 가 있다. 지난날들을 회고해 볼 때 아쉬움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성도 없을 뿐 아니라 그래 보았 자 인간은 또 별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두 번 사는 길이 있다. 섬김과 나눔의 삶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함께 하는 것이며 죽어보지 않고도 두 몫을 살수 있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다. 반드시 일등을 해야만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다. 꼭 자신이 다 거머쥐고 있 어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도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다. 눅 16장에서의 어떤 부자를 볼 때, 단언컨대 성경이 말 씀하시는 성공이나 행복은 지상주의(至上主義)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공은 균형과 조화(調和)이다. 나는 가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려지는 장기려 박사님 생각을 한다. 그 분이 돌아가신 직후, 그 분을 회고 하 는 여운학 장로님의 글에서 (당신이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에서 돈이 없어서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밤중에 몰래 도망가라”고 귀띔을 해 주었다는 내용을 읽으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만 울고 말았다. “아- 신앙인으 로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저것이로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참된 지식인은 아는 만큼 비판해야 한다. 비판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건강한 비판 적 사고에 의해서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건강한 비판은 합리적 대안을 가지고 하는 비판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말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그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도 돌릴 수도 있어야 한다. ‘절대자는 나를 보내 신 목적이 무엇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절대자의 당초 의도(意圖)에 맞는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물어야 하고 고민도 해야 한다. 사람은 고민하는 만큼 성숙해 진다. 호스피스 현장은 우리가 얼마나 제한적인 존재인가를 절감케 하는 시청각적 교육의 현장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가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학습의 현장이다. 어느새 우리의 중요 화두(話頭)는 몇 명 모이는가? 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 숫자 놀음이 아니라 성숙한 사고를 가진 성도가 그 공동체 안에 과연 몇 명이 있느냐? 이어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고민할줄 아는 사람들이 구성상 비중이 높은 교회는 외적 규모와 상관없이 성숙한 교회다. 호스피스현장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미숙이 성숙으로 가는 길목에는 호스피스의 현장이 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것 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자는 이것을 그의 마 음에 둘 찌니라”(전7:2)고 하셨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라’고 하신다. 두고두고 음미(吟味)할 말 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