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이야기

갈색 향의 유혹에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잠시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일

상의 시간이 더욱 분주한 요즘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 콤마를 찍고, 시작과 끝이라는 임의적 나눔의 시

간으로 더욱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12월입니다.

얼마 전 TV 프로 ‘황금어장’에서 나누던 유머가 생각납니다. “인디언 부족들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은?” 질문에 “

추장.” 이어 “추장보다 더 높은 사람은?” “...”. 질문자가“고추장” 답하며 “고추장보다 더 높은 사람은?” 질문에

이번에도 “...”. 질문자 다시 “초고추장” 모두의 폭소와 함께 “초고추장보다 더 높은 사람은?” 이번에는 이리저리

머리로 생각하는 모습 이었으나, 역시 “...”. 진행자 다시 “태양초고추장”이라는 대답에 모두가 끄덕이며 크게 웃

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유머이지만 가히 요즘의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기에 부족함이 없

는 듯합니다. 그러나 뭔가 2%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이제 영락없는 쉰 세대(?)입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의 빠

르고 편안함이 있어도 삶의 느낌표, 물음표, 쉼표로 쉬어가는 아날로그 삶에 애정이 가며 시선이 고정되곤 합니

다.

저희 메트로병원 내 호스피스병동의 일상에서 아날로그 삶을 실천하며, 디지털시대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는 봉

사자님들을 뵐 때마다 -‘진정한 돌봄이란 무엇일까? 그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의문을 던져 보곤 합니

다. 몇 해 전 간호 세미나에서 노국문학자는 “돌봄”이 갖는 본질에 대하여 깊이 들여다보며 찾은 결론엔 귀한 네

가지 속성이 담겨져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속성은‘살림’‘베품’‘비움’‘나눔’이라는 정의를 들었습니다. 지난 달

청남대 입구에서의 야외예배 중 목사님의 “초대받지 않은 자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귀한 사역의

자리에 부름 받고 나온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봉사 현장이야말로 진정한 돌봄의 회환과정의 실제임을 이제야 깨

닫습니다.

돌봄의 회환 고리는 호스피스 환우와 가족에게 무기력에서 기력을, 무관심에서 관심을, 무가치에서 가치를, 절

망에서 희망을 이끌어 내는 활동은 “살림”의 첫 번째 과정이며, 살림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의 시간과 노력

과 애정을 아낌없이 나누는 “베품”은 두 번째 과정으로 여겨지며, 지침 없이 베풀기 위해서는 “비움”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비워진 그 곳에 부름 받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시 채워 “나눔”을 실천하는 그 모습

은 진정한 돌봄에 대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호현장에서 25년을 보내고 있는 나를 조용히 되돌아봅니다. 현재의 나는 어느 과정의 몇 번째 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지 자문해 보곤 합니다. ‘살림과 베품’의 과정 속에 머뭇거리며 꾸물대고 있는 나를 향하여 꾸준히 채

찍질하려 합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이 “비움”이라 여겨집니다. 어떻게 비우고 채워야 진정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지 고민해 보지만 역시 어렵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숙제를 위해 오늘도 고민합니다.

예전 “민들레 홀씨”라는 자원봉사자 소식지에서 읽었던 한 봉사자님의 ‘마음의 三毒’에 관한 글 내용을 옮겨 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세 가지 毒이 있다고 합니다. 즉 貪, 瞋, 痴 라는 마음의 三毒이지요. 첫째, 貪(탐할 탐)은 사

람이 탐을 내게 되고, 탐을 내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을 내다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겠지요. 그러

면 좋지 않은 결과가 오겠지요. 이것이 첫 번째 毒이요. 둘째, 瞋(눈 부릅뜰 진)은 글자그대로 눈을 부릅뜬다는

것은 싸우려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다툼이 오겠지요. 다툼이 된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

를 좋아하다보면 남을 헐뜯게 되고 남을 헐뜯다보면 눈을 부릅뜨는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毒

이 됩니다. 셋째, 痴(어리석을 치)는 심사부족(心思不足)이라 해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뜻이며 어

리석다는 마음이 되겠지요. 남을 생각지 않고 나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세 번째 毒 이 됩니다.

』라는 글과 함께 마음의 三毒을 이겨내는 힘은 ‘仁(어질 인)’에서 나온다는 내용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머리로는 모든 단어가 쉽게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여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나약

함과 미욱함에 제 자신 머리를 쥐어박으며 꾸짖어도 봅니다. 오늘은 몇 번이나 貪 했는지, 몇 번이나 瞋 했는지,

얼마나 痴 했는지 반복된 반성에 송구할 정도입니다.

안양호스피스선교회 김승주 목사님을 중심으로 실장님, 봉사자님들의 미소와 힘의 원천은 ‘마음의 三毒’을 비우

고 ‘仁’으로 채워져 살림-베품-비움과 채움-나눔을 알았습니다. 주님이 보내 주신 귀한 인연으로 연결된 고리 속

에 하나가 되어 협동하며 돌보는 아름다운 동행의 삶에서 많은 의문이 풀립니다. 자원봉사란 나의 삶을 주님의

도구로 내려놓은 초대받은 자들의 현장이라 믿습니다. 한 분 한 분께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

을 전하며, 2008년 새해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묵주 알을 돌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안양호스피스선교회 사역자

가 함께 하는 메트로병원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