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걷기와 가벼운 등산을 즐기는 편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밀포드 트래킹을 할 기회를 가

졌다. 서울에서 12시간을 날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하고 다음날 국내선을 이용하여 남섬의 퀸즈타운에 갔

다. 퀸즈타운은 맑고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있으며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참으로 아름답고 깨끗하고 평

화로운 마을이었다.

뉴질랜드의 남섬에는 만년설과 빙하로 둘러싸인 3000m 이상의 고봉이 즐비하다.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된 지형
으로 150만 년 전 빙하가 쓸고 간 지역에 급경사를 이루며 U자형 계곡이 형성되고, 계곡마다 만년설이 녹아 흘
러내리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강과 호수로 흘러서 장관을 이룬다.

밀포드 트랙은 퀸즈타운에서 출발한다. 밀포드 트랙은 1888년 퀸틴 메키논에 의해 테아나우 호수 북단에서 클린
튼 밸리를 따라 개척되어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알려져 있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
다. 개인 트래커와 가이드를 동반한 트래킹으로 구분해서, 하루 각 40명에 한하여 지정된 코스와 숙소를 이용하
는 조건으로 허가되며, 11월에서 4월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퀸즈타운에서 차량으로 테아나우로 이동하고, 2시간
남짓 배를 타고 테아나우 호수 북단에 도착했다. 테아나우 호수는 뉴질랜드에서 2번째로 큰 호수인데 길이가
65km, 깊이가 417m나 된다고 한다. 호수의 북단에 있는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국립공원 관리요원이 등산화를
소독약 통에 담근 다음에 땅을 딛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본래의 밀포드 트래킹의 시작이다. 4박 5일을 함께 한
트래커는 모두 37명이었고 전문가이드 4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였다. 글래이드 하우스에서 첫날 저녁식사
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까운 호주부터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스코틀랜드, 스웨덴, 영국, 미국에서
왔고, 10대부터 65세까지,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트래킹이었다. 가이드들은 재미난 동작과 유머를 섞어가며 밀포
드 트랙의 역사와 변천과정, 4박 5일간의 산행여정, 주의사항, 로지에 대한 안내, 특히 다음날 날씨와 트래킹 코
스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참으로 청정한 환경이기에 밤하늘이 궁금하였고, 남반구의 끝, 늦은 봄으로 낮이 길어
서 자다가 일어나 별을 보았는데 별이 얼마나 많고 크고 밝은지 하늘 전체가 샹들리에가 커져 있는 모습이라 겁
이 날 지경이었다. 하나님이 저 찬란한 우주 가운데 지구를 만드셨고, 잠깐 이 세상에 머물다 가는 나 한사람이
어찌나 작아 보이는지, 별자리를 추측해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2일째, 각자 취향에 맞추어 준비한 샌드위치와 과일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늘을 덮은 숲길에는 지름이 1.5m 이

상 되는 거목들이 늘어서 있으며 클린튼 강을 따라 완만히 오르다 보니 깎아지른 듯한 눈 덮인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좀 더 가니 햇살이 따가운 너른 초원지대와 관목지대가 나왔다.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산에는 폭포들

이 흘러내리고 호수에는 산 오리들이 노닐고 있었다. 송어 같은 큰물고기가 물속 그림자로 인해 한 마리가 헤엄

치는 것인지 두 마리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물이 깨끗하였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나와 남

편은 절로 찬송을 부르며 쉬엄쉬엄 가니 3시쯤 폼포로나 로지에 도착하였다.

 
3일째 아침 7시 30분부터 출발이다.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했다. 트랙 도중에 눈사태 지역을 여럿 통과해야 하
므로 위험 표지판 있는 곳은 쉬지 말고 빠른 속도로 통과하여야 했다. 군데군데 거대한 나무들이 넘어져 있고,
굴러 떨어진 큰 바위들과 쏟아진 작은 바위가루들, 눈사태의 흔적들이 있었다. 민타로 호수부터 매키논 패스까
지 지그재그로 오른다. 오르막 주위에 나무들이 사라지고 키 작은 야생화 꽃밭, 흰 마운틴 쿡 릴리가 흐드러지게
피워있어 힘든 오르막을 즐겁게 했다.

드디어 클린튼 강과 아서 강의 분수령인 1073m의 매키논 패스에 올랐다. 눈 쌓인 발룬산, 엘리오트산을 둘러보
고, 2일간 올라온 클린튼 계곡, 서쪽의 아서 계곡을 한눈에 돌아보며 모두들 자리를 뜰 줄 모른다. 고갯마루에는
트랙을 개척한 퀸틴 메키논을 기념하는 기념돌탑이 세워져 있다. 매서운 바람에 옷을 여미는데, 앞서 한 짐을 지
고 가던 가이드가 손짓한다. ‘핫쵸코와 치킨스프중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고갯마루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고,
또 기온 하강을 배려한 것으로, 나는 핫쵸코, 남편은 치킨스프를 먹으며 맛도 있었지만 이 높은 곳에서 받는 서
비스에 감격했다. ‘케아'라는 새가 사람주위와 배낭 주위를 돌며 쪼기도 한다. 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 1154m 까지 오르다 퀸틴 로지까지 800m를 지그재그로 내려가야 하는데, 계곡 위 제르보이스 빙하가 녹아내리
면서 산사태를 자주 일으켜 트랙이 막혀버리기 일쑤란다. 이번에도 메인 트랙이 폐쇄되어 질러가는 트랙으로 내
려왔다. 벌룬 산기슭을 끼고 돌아서 내려가는 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들이 계곡을 흔들면서 연이어 나타났다. 주
변의 나무는 이끼가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으스스한 느낌, 신비한 느낌이 강했고, ‘반지의 제왕' 영화의 신비스런
느낌이 이런 배경에서 촬영하였다는 것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깊은 너도밤나무 숲길을 지내고 나니 퀸틴 로
지가 나타났다. 퀸틴 로지에서 왕복 2시간 거리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서더랜드 폭포가 있으며, 총길이
540m 1904ft로 3단 폭포인데 2일전 큰 눈사태로 위험하여 폐쇄되었다고 못 가게 하였다. 그 큰 굉음을 들어보지
못해 아쉬웠으나 폭포의 상단, 중단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퀸튼 산장에 도착한 모두는 힘든 코
스를 통과하였다는 안도감에 라운지에서 많은 와인과 맥주를 들며 행복해 하였다. 내일은 완만한 내리막길이지
만 21km를 걸어야 한다. 
 

4일째 코스는 거대한 양치식물들이 우거져 있는 열대우림의 숲길이었고, 아서 강줄기를 따라 산자락에서 흘러

내리는 크고 작은 내를 건너며 폭포들을 보고, 아서 강이 넓고 고요한 아다 호수로 변하는 장관을 바라본다. 모

두 쉬지 않고 밀포드의 실질적 종착지인 샌드 플라이를 향해 걸었다. 샌드 플라이에 도착한 트래커들은 서로 서

로 격려하면서 헌 등산화가 걸려 있는 말포드 트랙 기념탑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마이터 피

크 로지까지 이동하여 가진 저녁 자축 모임은 어설픈 영어, 일본어, 몸짓을 총 동원하여 성취감과 헤어짐을 아쉬

워하며 늦게까지 이어졌다.
 
5일째 빙하협곡인 밀포드 사운드 쿠르즈에 나섰다.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아있는 마이터 피크(1672m)와 펨브로
크 피크(2000m)산들 사이로 내륙 깊숙이 들어온 피요르드 만이다. 눈 덮인 산봉우리와 바다에 그대로 비치는 마
이터 피크, 곳곳에 물보라 일으키는 해안 폭포, 무지개, 돌고래의 점프,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 물개들이 그대로
멋진 풍경화이다. 쿠르즈가 끝난 뒤 남알프스를 관통하는 호머터널을 지나 ‘반지의 제왕'의 배경이 된 몇 장소들
을 지나치며 퀸즈타운으로 돌아왔다.
 

떨어진 휴지조각 하나 볼 수 없고, 계곡물을 손으로 떠먹어도 되는 이런 청정 환경에 호스피스 쉼터를 옮겨 놓으

면 웬만한 병은 다 나을 것 같다. 그러나 내 나라가 아닌 걸 어쩌랴! 맑은 공기를 담아 올 수 있었으면...
오클랜드로 돌아와서 이민간지 오래된 친구 가족들을 만났다. 주거환경, 자연 환경은 서울에 비할 수 없이 좋아
보였지만 모여 앉으니, 생활걱정, 자녀들 취직 및 결혼 걱정 등, 예전 같지 않은 건강, 한국에 나와 진료 받은 이
야기, 한국의 부모님 이야기, 한국의 정치이야기는 서울에서 우리의 삶과 똑 같았다. 내 나라에 돌아가면 삶을
좀 내려놓고,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내 나라 자연을 사랑하고 돌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인천으로 향했다.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의 약간의 여유는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면서 주신 특별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