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주 목사 1
본회 실무책임자 1
 
저에게는 십수 년 전 자동차 면허 취득을 준비하면서 강사로부터 들은 바 있는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즉'어리석은 운전자는 연료 확인도 하지 않고 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은 황당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 없는 여행이나 준비 없는 인생이나 경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특별히 준비해야 할 날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날 3일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태어나는 날'입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습
니다.
 
둘째는 '죽는 날'입니다.(히 9:27 상)
한번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는 죽음의 종착역을
향해 출발한다는 신호와 같다." 고 하였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도 필연적인 것이 죽음이
지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드리는 데는 매우 소극적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죽음의 현장을 자주 접하는
사람이나 직업적으로 죽음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한
듯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죽어야 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면 죽음의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한마디로 '왜곡된 관계의 원상복구' 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요에 따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그 관계는 이런저
런 이유로 왜곡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절대자와의 관계가 그렇고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가 그렇고 일생동안 사용
하고 남은 재산의 처리 관계가 곧 그것입니다.
이제 생을 마감하는 즈음에는 왜곡된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
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과제인 것입니다.
 
셋째로'심판의 날'입니다.(히 9:27 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는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심판)에 대한 영적 짓눌림이 있습니다. 그
런데 마 25장을 자세히 보면 주님은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하였는가'를 놓고 우리 인생의 최종평가의 기준
으로 삼겠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그렇다면 본문에서 드러난 메시지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그날을 준비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작은 자'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소위 잘 나가고 똑똑하던 이들은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주님도 취미 없으신 것은 어쩔 수가 없으셨나 봅니다. 대신에 소외되고 고통 받던 이들은 일부
러 찾아다니시기까지 하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심판대 앞에서의 관심도 역시 '작은 자' 였습니다. 주님은 작은 자, 즉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벗은
자, 병든 자, 갇힌 자 하나에게 행한 선행은 주님 자신에게 베푼 선행으로 받아드리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
다. 주님은 이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현실적으로 가장 작은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바로'죽음 앞에 서 있는 자'입니다.
위에서 하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드린다면 죽음의 문턱에서 마지막 잎새처럼 떨고 있는 사람은 '지(至) 지
극히 작은 자'인 것입니다. 그가 과거에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자였다 한들,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던 식자(識者
)였다 한들, 돈 많은 부자였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하나같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지극히 작은 자' 아니 '지(至)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봉사의 자리는 여러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만 마25장에 근거하자면'지극히 작은 자'를 섬
기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현실적으로는 주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뤄드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리이며
, 마지막 날 그 자리에 섰을 때에는 우리 인생 전반을 염소가 아닌 양으로 평가 받게 하는 초석을 마련하는 자리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태어나는 날이라면 자신으로써도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죽는 날과 심판의 날이라면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호스피스 봉사는 확실히 축복입니다.
 
본 원고는 월간 '세브란스호스피스' 67호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