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즈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후 일고 있는 추앙(推仰)분위기에 놀라고 있습니다. 조직적 동원도 아닌데

5일에 40만 명이나 조문을 하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분의 삶이 그만큼 존경스러웠고..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그분의 서 있던 빈

자리가 그만큼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고뇌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분은 추기경이 된 후 첫 번째 가진 피정(묵상과 성찰의 기간)을 마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고 부족한데 사

람들은 귀족처럼 대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다”고 했다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대하면서도 자기성찰의 도구로 삼지는 않고 쉽게 남을 가르치려고나 하고 심지어는 정죄하는 수단

으로 이용하던 바리새인들과는 좋은 대조가 됩니다.

2)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그분의 선종 후,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일화들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분이 호스피스 사역과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11년 전. 안호선 설립을 준비하면서 몇 군데의 호스피스 기관을 견학차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강

남성모병원이었습니다. 그 곳은 대학병원이므로 증상치료 수준만을 유지해야하는 호스피스병동의 운영은 현실

적으로 불가능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놀랍게도 이미 병실. 목욕실. 임종실. 사무실...의전용병동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사연을 물으니 “우리 병원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는 추기경의

권고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상은 깨어있는 한 두 사람에 의해서 바뀌어 가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론적이지만 그분

의 권고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 곳엔 호스피스병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까지도 호스피스 제도는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락가락하는데 무슨 선교냐”며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다는

추기경은 자신의 선종을 앞두고는 ‘인공호흡’ 등의 인위적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신과 자연의 섭리에 맡김으로써

어느 날 저는 방송에서 그분이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

리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성가나 명곡을 불러야할 분이 저런 노래도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

니다. 그 노래는 추기경 수준에는 맞지 않는 노래였습니다. 대중가요니까요. 그분은 그런 유치(?)한 류의 노래를

자주 불렀고, 불렀을 뿐 아니라 그 노랫말 가사 대로 살기 위하여 마음을 쓰시다가 가셨습니다.

그분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이 큰 자. 힘 있는 강한 자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작은

자. 힘없는 약자들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알고 있었고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이른바 ‘행동하는 양심’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의 곁을 떠나신 것은 지도자 고갈(枯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아픔입니다. 추앙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TV에서 어떤 분이 “그런 분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옳습니다.  제발 그런 분들이 많

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강물만 물이 아닙니다. 냇물도.. 실개천도 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큰 사랑만 사랑이 아닙니다. 작은 사랑도 사랑입니다.

그분은 종교. 정치. 사회...등 다방면에 많은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우린 구조적으로도 그분만한 영향력 있는 위

치에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큰일은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수만 있

다면 우리 역시 그 분과 똑같은 성격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가 기준은 언제나 결과보다는 동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 분이 가리키는 산(山)은 보지 않고 손

(手)을 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분의 손이 아니라 산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종

파 교리가 아니라 그분의 삶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잘 사는 것인가를 보여주고 가신 바로 그 삶을 말입

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분이 남겨주신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메시지는 ‘사랑도 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분의 빈자리로 인하여 허전해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채워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