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바울의 생애를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었을까?

그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일과성과 같은 한 사건을 필연으로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속하기 위하여 그는 수시로 소명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그로 하여금, 고달프고 외로운 사역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게 하였고, 만인이 부러워하는 사표로써 생애를 살게 하였습니다.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은 비슷한 과(科)입니다만, 강도(强度) 면에서는 소명이 훨씬 더 강력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후손들에게 ‘내 삶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는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종교학자 정진홍 명예교수는 ‘내가 죽으면 누가 가장 슬퍼할까? 내가 떠나면 사람들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식들도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간 부모를 기억할 것입니다.

봉사자 자녀들이 봉사를 나오면 꼭 묻습니다.

“느낀 게 뭐 있어요?”

“우리 엄마(아빠)가 이런 일 하시는 줄 몰랐어요. 울 엄마 다시 보아야 겠어요^^”

호스피스에 직간접 참여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자식들 머리에 우리 부모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 분이야!’ 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소명자로서 나머지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행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아예 사명의 길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오대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딤후 4:6~8에서는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하였습니다.

진짜 소명자는 ‘아예 이 길에서 죽어야겠다’ 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제 남은 세월도 증언자로서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이제 뭐 하겠나...?’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인생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적같은 골은 게임 종료 몇분 전에도 얼마든지 터질 수 있습니다. 결국 소명감이 문제입니다..

저는 부르실 때까지 ‘호스피스 전도사’로 살고 싶습니다.

한창 때처럼 ‘임종을 지켜 드리겠다’고 자다가도 뛰어 나오던 일 같은 것은 지금은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를 널리 알리는 일에 그간의 임상 경험과 생각 등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로 삼아 널리 알려 주고는 싶습니다.

최근에 더없이 적합한 도구를 찾았습니다. SNS 세계가 어마 어마 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느 목회자분이 “아직도 호스피스를 하세요? 난 은사가 없어서..”하였습니다.

그가 얼마 전엔 암 수술을 받고 큰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교회가 땅에 존재해야 할 핵심 이유가 ‘죽음’(히2:15)인데 목회자로써 은사..운운하는데에 민망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죽음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또 어느 분은 “포기라니요 기적을 믿지 않으시나요? ” 질책까지 하며 호스피스 사역 무용론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님의 생각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올바른 죽음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기회를 주시는데 까지는 ‘호스피스 전도사’로 살다가 마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정하셨고, 부르셨다는 소명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이 아름다운 것은 조각같은 얼굴 때문만이 아닙니다.

노년에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세계 빈민 아동들 구제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현장에 뛰어 든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에 세계가 감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