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주 목사0
본회 실무책임자0
안락사와 호스피스 50
제 1편 신체적인 고통
제 2편 사회.정서적 고통
 
사람을 흔히 '사회적 동물' 이라고 합니다. 가정을 시발점으로 해서 직장이나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야 건강한 인격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공동체적 운명이 
라고 느껴질수록 더욱 견고해 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 이러한 말은 남녀가 만나서 부부를 이룰 때 나누는 이야기입니
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일단 한쪽이 시한부적 생명으로 선고된 후부터는 서로간의 다   
른 운명으로 인하여 환자는 인격적 동일성을 상실하고 깊은 소외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같이 기뻐하던 일들도 이제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여전히
즐거워만 한다면 그에 대한 야속함, 서러움 마져 느끼게 되며 때로는 분노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정신과 여의사 큐브러 로스는 "On Death & Dying" 라고 하는 그의 임상보고서에서 임종환
자가 겪게 되는 심리상태 5단계를 정리하여 제시한바가 있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수용의 단계
가 곧 그것입니다.
환자가 치유불가를 선고받으면 일단은 본능적으로 부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꼭 남의 일을 보듯이 대수롭지 않
은 듯 이야기하기도 하고 태연한 척 평소에 하던 일을 더욱 열심히 몰두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면서도 1차 진단
의 의사의소견을 무시하고 다른 의료기관을 찾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내심,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부 반응의 한 표출인 것입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불가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임이 재확인되면서부터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게
하게 되는데 그 대상은 절대자(신)이나 가족, 친구 등 평소에 가까이 하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표현임과 동시에 모든 관계를 상실하고 싶지 않다는 소외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가 모신 환우님 중에는 입원 당시로부터 줄곳 남편 곁을 지키던 부인이 지친 몸을 쉬려고 잠시 자리
를 비운 사이에 "내가 죽을 때 그ㅇ를 데겨가지 않는가 두고 보라" 면서 이를 갈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본 적
이 있습니다. 마치 그럴만한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환자의 성격이 고약하거나
난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적 소외에 대하여 그만큼 고통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적 호스피스의 창시자인 영국의 여의사 '시실리손더스'의 "당신이 임종할때까지 결코 홀
로 두지 않겠다"고 하는 봉사철학은 환자들에게는 이만 저만의 위안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료, 사회복지, 종교, 및 일반봉사 등의 모든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는 그 고유의 기능적 역할을 강조
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제 막 또 다른 길을 외롭게 떠나야 하는 한 나그네의 진솔한 친구가 되어주려는 마음
가짐이 더 요구되는 것입니다.
 
세상전체가 자기를 외면하는 듯한 현실 앞에 너무 외로워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 까지 절규하는 환
우를 향하여 " 당신이 세상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함께 있어주겠다" 고 하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격려는 환자
로 하여금 안락사를 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했던 격앙된 감정을 확실히 경감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
음 더 나아가서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생산적 의욕을 증진시켜주게 될 것이면, 우리 모두가 그
렇게도 원하는 선종의 중요한 동기를 부여해 주게 될 것입니다. 호스피스봉사자는 생애 최대의 위기 가운데서,
그것도 외로움에 떨고있는 말기환우들의 문자 그대로의 '친구'입니다.
(다음 호에는 제 3편 영적 고통편이 소개됩니다.)